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한반도포커스-김재천] 미·중의 한반도 정책 속성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의 회고록 ‘임무(Duty)’에 의하면 2010년 북한의 연평도 공격 후 이명박정부는 공습(aircraft)과 포격(artillery) 등 대규모 군사 보복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보고받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직접 이 보복 계획을 만류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뿐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게이츠 장관 본인, 마이클 멀린 합참의장이 모두 발 벗고 나섰다고 한다. 이유는 보복 계획이 ‘과도하게 공격적(disproportionately aggressive)’이어서 전쟁으로 확대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핵항모 조지워싱턴호를 출격시켜 서해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원안 대신 연평도 공격을 감행한 북한의 진지를 보복 포격하는 선에서 이명박정부와 절충할 수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중국도 여러 채널을 동원해 북한에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 것을 촉구했다고 게이츠는 회고했다. 미·중이 나서서 남한과 북한을 뜯어말리는 흥미로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경쟁관계에 있는 강대국들은 전략이익에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그러한 이익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지역에서는 오히려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냉전 당시 유럽은 미국과 소련의 전략이익이 가장 팽팽하게 대립했던 지역이었지만 ‘이익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합의는 없었지만 미국은 동유럽을 구소련의 완충지대로, 소련 역시 서유럽을 미국의 완충지대로 인정하고 있었다. 유럽에서의 군사 충돌은 동맹의 책무가 있던 양국 모두에게 큰 부담이었기에 유럽을 대상으로 한 경쟁은 전쟁으로 치닫지 않았고 역설적으로 안정적이었다. 미·소 군사 충돌은 전략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지 않고 이익의 균형도 부재해 보였던 한반도와 인도차이나 반도 같은 ‘주변부’에서 대리전의 성격을 띠며 발생했다. 1950년 당시 국무장관이던 딘 애치슨은 한반도와 대만을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에서 제외한 ‘애치슨라인’을 선포했고, 김일성의 끈질긴 간청에도 남침에 반대했던 스탈린은 미국이 한반도 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 후에야 김일성의 소원을 들어준다. 당시 소련 외무장관 안드레이 그로미코의 회고록에는 미국의 신속한 개입에 스탈린이 얼마나 곤혹스러워했는지 생생히 기록돼 있다. 유명인의 회고록에 역사의 해석을 전임할 수는 없다. 그래도 게이츠 회고록의 일화는 미·중의 한반도 정책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는 본격적인 경쟁 구도에 진입한 미·중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해 있지만 이익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미·중의 한반도 정책이 현상유지를 지향해 왔던 구조적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전략이익의 균형에 변화를 초래하는 중대 사건이 발생했다. 핵탄두를 탑재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이다. 미국은 여태껏 자제해 왔던 군사행동과 전면적 2차 제재까지 동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환구시보 사평을 통해 북한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정밀타격에는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며,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고려한 듯한 제스처까지 취했다. 하지만 북한 정권 교체 불가라는 전제조건이 있었고, G20에서 시진핑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중 혈맹관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지정학의 귀환과 함께 한반도는 다시 한·미·일 해양세력과 북·중·러 대륙세력이 격돌하는 각축장이 되었고, 김정은은 이러한 구도를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미·중 모두 유사시 한반도에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동맹의 책무를 안고 있다. 동맹의 책무가 아니더라도 전략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해 있는 한반도에 급격한 세력 변화가 발생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로 전면 충돌을 피하려는 동력 역시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자국의 전략이익에 직접 타격을 받은 미국의 향후 정책 대응이 궁금하다. 이명박정부를 뜯어말린 오바마와 달리 트럼프는 일전불사를 각오하고 한반도에 ‘올인’할 수 있을까?

김재천(서강대 교수·국제정치학)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