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아름다운 구속’의 해방



주중에 2박3일 집이 아닌 곳에서 혼자 지내다 왔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부터는 한 번도 외박할 일이 없었다. 4년 전 예술인지원금을 받으려고 프로젝트를 신청하여 그 워크숍으로 다녀온 1박2일 외에는 전무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그동안 가족과 함께 가는 여행이 아닌 나 홀로 여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생각해보니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지 않는 한, 유부녀이자 아이의 엄마인 여자는 집이 아닌 곳에서 혼자 지낼 그 어떤 명분도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런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고 있냐고 따지고 싶겠지만. 이 사회에서 특별한 직업이 없는 ‘전업주부’가 자녀 육아와 교육, 살림을 놓고 홀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유부남 또한 가정을 놓고 홀로 여행이 명분없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남성들은 회사일로 출장 갈 수도 있고, ‘사회생활의 연장’이라는 술자리가 길어지면 외박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에 따라 어떤 남성은 그런 사회적인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주중에 다녀온 곳은 병원이었다. 지난겨울에 어깨를 다쳤었는데 별 거 아니겠지 방치하다 어깨 관절낭에 염증이 생겨 통증이 심했다. 그래서 염증을 제거하기 위한 내시경 시술을 하느라 2박3일 외박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내시경 시술이라지만 마취도 했었고 마취가 풀리기 전까지 하룻밤, 내 팔 같지 않은 내 팔을 내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을 보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결혼서약에는 항상 이런 구절이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늘 함께하겠다’는 약속.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약속이다. 그 약속 때문에 ‘결혼’은 서로를 더 힘들게 하는 구속이 돼 버린다. 현대의 결혼서약은 바뀔 때가 됐다. ‘사랑하는 이의 독립적 자유를 보장해주기 위해서 상대가 혼자 있고 싶어 할 때는 오롯이 그 자유를 보장해주자’는 약속. 그것이 더 성숙한 현대의 결혼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약속이다.

글=유형진(시인), 삽화=전진이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