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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기



태양계의 두 번째 행성으로 태양과 달에 이어 별들 중에서 가장 밝은 별인 금성(金星)을 부르는 이름이 많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별들 중 가장 아름다운 별이라고 해서 미(美)의 여신인 비너스(Venus)라 붙여주었습니다. 금성은 우리말로 샛별이라 합니다. 동쪽을 뜻하는 우리말 ‘새’와 ‘별’이 합해져 동쪽에서 뜨는 별을 가리키는 샛별이 된 게지요. 동쪽에서 부는 바람을 ‘샛바람’이라 칭했던 것과 같은 용례입니다.

금성은 별들 가운데 가장 먼저 떠서, 가장 늦게까지 하늘을 밝혀주는 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인들 가운데 일부는 초저녁에 뜨는 금성을 보며 ‘저녁별(Evening Star)’이라 불렀고, 다른 이들은 가장 늦은 아침 시간까지 떠 있는 금성을 보고 ‘아침별(Morning Star)’이라 불렀다지요. 중국인들은 아침 늦게까지 떠 있는 모습에 ‘신성(晨星)’이라 했고 새벽을 깨우는 별이란 뜻에서 ‘효성(曉星)’으로도 불렀습니다.

‘개밥바라기’란 초저녁에 떠오른 금성을 부르는 순우리말입니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던 개들이 해가 뉘엿뉘엿 산마루를 넘어갈 무렵 제 집에 돌아가 주인이 주는 밥을 바라고 있을 때 떠오르는 별이라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닭의 울음소리가 새벽을 열어주듯 금성의 빛이 아침을 열어준다고 해서 ‘계명성(啓明星)’이라 명명했습니다.

밤의 어둠을 밝혀주는 별의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그 역할 또한 여러 가지입니다. 여행길의 나그네에게는 나침반이 돼줍니다.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다정한 말벗이 되어주기도 하고요. 문학도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천문학자들에게는 우주의 질서와 규칙에 대한 통찰력을 주기도 하고 종교인들에게는 더없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동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요. 이렇듯 다양한 이름과 역할에도 별은 떠오르는 태양에 등 떠밀려 사라져야만 하는 슬픈 운명을 안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를 ‘기라성(綺羅星)’이라 착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드물게 태권도를 배웠던 터라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건들거리며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이었지요. 그 무렵 제 소원은 기필코 이소룡이나 성룡처럼 ‘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무던히도 많은 까까머리 중학생들에게는 필요악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치면 학교폭력의 가해자이자 주동자였으니까요. 유독 가혹하게 괴롭혔던 동급생이 있었습니다. 혹독한 괴롭힘을 당한 그가 이튿날 시퍼렇게 멍든 눈으로 그윽이 제 눈을 바라보며 건넨 한마디는 지금도 가슴에 비수가 돼 깊이 박혀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널 미워하지 않아.”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태양이겠습니다. 이른바 ‘갑질’하는 사람은 응당 자신을 별이라고 착각할 테지요. 그러나 별은 해가 뜨면 사라지는 법입니다. 태양을 결코 이기지 못하는 법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이즈음에 유독 그 친구의 말이 기억의 바다에서 출렁이며 묵직한 다짐의 바위 하나에 부딪칩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기.”

김광일 목사(김제 창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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