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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위해 탈출”… ‘미세먼지 이민’, 3040도 탈조선 꿈꾼다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로 수도권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닷새째 계속된 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중구청 분진청소 차량이 도로 물청소를 하고 있다. 


“미세먼지 때문에 우울해요. 이민을 가고 싶을 정도예요.”

하늘을 잿빛으로 물들인 미세먼지는 사람의 마음을 위축시킨다. 닷새째 몰아치고 있는 고농도 미세먼지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패션·육아·건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은 생활 전반에 깊숙이 침투한 미세먼지로 인한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 중 하나는 이민이다. 네이버 인터넷 카페에서 5일 오후 5시 현재 ‘이민’이 언급된 게시물은 1만2000여건이나 검색되고 있다. 미세먼지가 사회 현안으로 본격적으로 떠오른 2015년 이후 4년간의 검색 결과다. 전국의 미세먼지·초미세먼지 농도는 같은 시간을 기준으로 이날 ‘매우 나쁨’ 수준을 가리켰다. 미세먼지 농도는 세종(199㎍/m³)·경기(189㎍/m³)·서울(184㎍/m³) 순으로 나타났다.

그저 막연한 푸념이 아니다. 봄마다 산천의 실록을 잿빛으로 가리는 미세먼지는 한반도의 일상을 바꿨다. 자신을 사무직 회사원이라고 밝힌 패션 커뮤니티 카페 회원 A씨는 작심한 듯 글을 올렸다. “미세먼지가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서도 한국에서 살 수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제주에 처음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진 5일 제주시 도심(아래)이 뿌옇게 보이고 있다. 위 사진은 지난해 7월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전경으로, 도심지 뒤로 구름 아래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A씨는 “이민을 떠나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단점들이 상쇄될 만큼 나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본다. 진지하게 이민을 고려하고 갈 준비를 하겠다”고 적었다. 다른 회원들은 일본, 캐나다 등 국가를 추천하며 A씨의 의견에 호응했다.

육아 카페 회원 B씨는 “미세먼지 때문에 정말 이민을 고려하시는 분들이 있냐”는 질문을 게시판에 올렸다. 그의 게시물 아래에 “미국 투자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만이라도 유학 보내거나 가족 다 같이 이민 가는 쪽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댓글이 달렸다.

며칠째 뿌옇게 뒤덮인 하늘을 보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자동차 관련 카페 매니저 C씨는 주말마다 드라이브하며 풍경을 눈에 담는 즐거움을 잃었다. 그는 “맑은 하늘을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며 “생활에 활력도 떨어지고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도 우울하다”고 썼다.

육아 카페 회원 D씨는 3·1절부터 주말 이틀로 이어진 3월 첫 주의 사흘 연휴를 맞아 나들이 계획을 세웠지만 미세먼지 탓에 떠나지 못했다. 그는 “임신 중에 사흘 내내 ‘방콕(방에만 콕 틀어박혀 있음)’하면서 기분이 참 우울했다”고 했다. 우울증 치유 관련 카페에선 “딸이 한국에 살면 미세먼지 때문에 우울증이 낫지 않는다고 말한다”는 학부모의 호소도 올라왔다.

백승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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