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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우가 떠나기 전 했던 말 “아빠, 주전 되면 다 막고 올게요”

러시아월드컵 ‘세이브쇼’ 한국 축구대표팀 골키퍼 조현우 아버지 조용복씨 인터뷰
 
한국 축구대표팀 골키퍼 조현우가 27일(현지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F조 3차전에서 독일 미드필더 레온 고레츠카의 슛을 막고 있다. [AP]
 
 
아들 혼자 버티는 골문으로 상대가 페널티킥을 찰 때 아버지는 TV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장로교 신자인 그는 페널티킥 선언 순간 “막아내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눈을 감았다가 실눈을 떴다가,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보다가 했지요….” 한국 축구 대표팀의 골키퍼 조현우의 아버지인 조용복(62)씨는 29일 서울 강서구 자택에서 기자를 만나 “아들이 스웨덴과 멕시코의 페널티킥 중 1개만 막아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욕심이 든다”고 말했다. 전 세계가 조현우의 선방 쇼에 들썩였지만 조씨는 아직 얼떨떨하다. 그는 “현우가 이렇게 세계적인 무대에서 잘 할 거란 상상은 못했다”고 말했다.
 
조현우는 온 나라가 2002 한·일월드컵의 열기에 휩싸인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선수가 됐다. 서울 신정초 축구부가 선수를 모집할 때, 모든 학생이 “쟤가 축구를 제일 잘 해요”라며 조현우를 가리켰다고 한다. 태권도를 배운 지 1개월 만에 지역 대회 출전을 준비할 정도로 몸이 날랬던 조현우는 골키퍼가 됐다. 축구선수 중 김병지를 가장 좋아하기도 했다.
 
골키퍼는 훈련이 고된 포지션이었다. 날마다 무릎이 까져 돌아오는 아들이 안타까워 운동을 만류하면, 조현우는 밥도 먹지 않고 투정을 부렸다. 축구할 시간을 허락하면 좋아하며 집을 뛰어나갔다. 초등학생 시절 장래희망을 주제로 한 글짓기 대회에 내보냈더니 조현우는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나가겠다”고 썼다. 조씨는 “그쯤 되니 부모도 두 손을 들게 됐다”고 말했다.
  
조용복씨가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아들의 사진과 메달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조용복씨가 한국 축구대표팀의 출국을 앞두고 아들과 주고받은 모바일 메시지.
 
조현우는 중대부중 시절 서울 소년체전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결정적인 선방을 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중대부고와 선문대를 거쳐 프로에 입성했고, 대구FC에서 뛰며 2016시즌 0점대 실점율을 기록했다. 꾸준한 활약을 인정받아 2018 러시아월드컵 대표팀의 최종 엔트리에 들었다.
 
대표팀에 승선한 날 조현우는 조씨에게 “아빠 소원, 내 소원대로 됐다”며 “선배들에게 잘 배우고, 만일 기회가 온다면 있는 힘을 다해 막아 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씨는 “절대 교만해지지 말고 열심히만 하라”고 답했다.
 
무뚝뚝한 답변과 달리 조씨는 속으로 뭉클했다. 그는 “다른 부모들처럼 뒷바라지를 잘해 주지 못했는데, 현우는 속 깊은 아들이었다”고 했다. 조씨의 직장은 조현우가 중학생 시절 부도가 났고, 조씨는 슈퍼마켓을 운영해야 했다. 가게를 비울 수 없던 조씨가 “미안하다. 아빠가 (경기장에)못 가게 됐다”고 말하면 조현우는 “아빠 걱정 마, 내가 열심히 해서 프로 선수가 될게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조현우가 월드컵에서 보인 날랜 몸놀림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조씨는 학창시절 기계체조 선수였다. 허리를 다쳐 선수생활을 관둔 뒤에도 생활체육으로 태권도를 오래 했다. 자신을 닮아 마른 체형인 조현우를 보면서, 조씨는 ‘축구선수로서는 너무 왜소한 체격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조현우는 “골키퍼는 민첩한 게 더 중요하다”며 조씨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조현우 아버지 조용복씨. 최종학 선임기자
 
조씨는 “축구는 감독님과 코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이고, 나는 딱 한 가지 정신만 강조했다”고 말했다. 어떤 경우에도 환경을 탓하지 말고, 항상 팀과 함께하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조현우는 동료의 실수를 탓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말자’고 소리를 지르며 수비진을 독려했다.
 
그는 월드컵이 시작된 이후에는 아들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 혹여 생길 부담을 우려해서다. 조씨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팬들이 조현우를 원한다는 말에 대해 “아들이 잘 한다는 얘기야 뿌듯하지만, 지금 있는 구단에서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며 겸손해 했다. 조씨는 인터뷰 말미에 “국민의 성원에 감사한다”며 “이번에 많은 선수들이 질책을 받았는데, 모두 더욱 좋은 선수가 되도록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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