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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1조원' 팔리는 삼성·LG 세탁기, 미국 수출에 비상등

삼성전자 세탁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5일(현지시간) 자국 세탁기 산업이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밀려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정했다. 이번 판정이 청문회를 거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승인까지 받게되면 연간 1조원이 넘는 삼성·LG 세탁기 수출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ITC는 미국 가전 업체 '월풀'이 삼성전자와 LG전자를 겨냥해 제기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청원을 이날 받아들였다. 청원 심사위원 4명은 만장일치로 "수입 세탁기의 판매량 급증으로 국내 산업 생산과 경쟁력이 심각한 피해 또는 피해 위협을 받고 있다"며 월풀의 손을 들어줬다. 세이프가드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증해 자국산업이 피해를 보게됐을 때 정부가 나서 이 품목 수입을 제한하는 무역 규제다. 상대국이 불공정 무역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발동될 수 있다.

이날 판정이 바로 세이프가드 발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청문회와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 등 절차가 남아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 기조를 유지해온 것을 보면 세이브가드 압박이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ITC는 반덤핑과 관세, 무역 불공정 행위 등을 조사하는 미국 대통령 직속 준사법적 독립기관이다. 

이번 판정에 담긴 세이프가드 적용 대상은 삼성과 LG의 대형 가정용 세탁기다. 월풀은 양사가 반덤핑 규제를 피하기 위해 중국 등으로 공장을 옮겨 제품을 만들면서 자국 세탁기 산업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이 제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월풀(38%), 삼성(16%), LG(13%) 순이다.

한국산 세탁기는 피해 판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삼성과 LG 모두 제품 대부분을 베트남 등 해외공장에서 제조·수출하고 있어 '한국산 면제' 수혜는 크지 않다.

ITC는 오는 19일 수입량 제한 등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구제조치(remedy)' 공청회를 개최하고 내달 투표에 부쳐 구체적인 방법과 수준을 결정할 계획이다. 12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제안을 건의하고 최종 결정을 기다릴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최종 결론은 내년 초에 나온다.

트럼프 정부 들어 ITC가 한국산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요청 안건을 심의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ITC는 지난달 22일에도 한국과 중국, 멕시코 등에서 수입된 태양광 패널이 자국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고 판정했다. 미 태양광 패널 업체 '수니바'와 '솔라월'이 지난 5월 제기한 청원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와 업계는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이 부당하다며 맞서왔다. 산업부와 외교부는 지난달 7일 열린 ITC 공청회에서 월풀의 청원은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삼성과 LG도 미국의 세탁기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지 않다며 월풀 주장을 반박했다.

미 연방 상하원 의원 69명도 지난달 8일 ITC에 서한을 보내 "관세를 부과하면 캘리포니아주를 중심으로 내년에 태양광 일자리 8만8000개가 사라질 수 있다"며 세이프가드 발동에 반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세이프가드 청원과 구제조치를 받아들이면 16년 만에 세이프가드가 부활하게 된다. 앞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2년 한국산 등 수입 철강제품에 8~30% 관세를 부과했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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