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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공식’ 돼버린 2가지…①가짜뉴스 ②IS “우리가 했다”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현장. 뉴시스

테러로 추정할 수 있는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테러범이나 희생자와 관련한 ‘가짜뉴스’가 사건 직후부터 소셜미디어에 쇄도한다. 사건 경위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시점을 노려 사실로 오인되기 쉬운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지난 5월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 테러와 지난 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직후에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영국 BBC 방송은 3일 “가짜뉴스의 범람이 테러의 공식처럼 돼 버렸다”고 보도했다.

‘팩트’를 확인하느라 어수선한 초기 단계를 가짜뉴스가 휩쓸고 지나가면 급진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입을 연다. 주로 선전매체 ‘아마크 통신’을 이용해 온라인 공간에서 ‘성명’을 공개하는 방식인데, 하나 같이 “이번 테러를 우리가 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영국 런던, 스페인 바르셀로나,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 최근 서구에서 벌어진 테러 추정 사건마다 IS는 입버릇처럼 배후를 자처했다. ‘대규모 인명피해 → 가짜뉴스 범람 → IS 성명’의 패턴은 공식처럼 반복되고 있다.

◇ 팩트가 불명확한 시점에 맞춰… 범람하는 ‘가짜뉴스’ 

미국 라스베이거스 총기 참사 직후 한 소셜미디어 계정에 미소 짓고 있는 남성의 사진이 올라왔다. 계정의 주인은 이 남성이 자신의 형이라며 이렇게 적었다. "형이 오늘 라스베이거스에 갔는데, 지금 전화를 받지 않아요. 형을 보신 분 있나요? 도와주세요, 제발!"

형이 라스베이거스 참사에서 희생됐을지 모른다며 도움을 호소한 이 글과 사진은 몇 시간 뒤 '가짜'로 판명됐다. BBC 방송은 사진 속 인물이 음식 리뷰 등을 제공하는 유튜브 채널 'TheReportOfTheWeek'의 운영자로 확인됐다고 2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는 라스베이거스에 가지도 않았고 지금 멀쩡히 살아 있다. 

그의 사진은 지난 5월 팝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장에서 벌어진 영국 맨체스터 테러 직후에도 '희생자'로 둔갑해 소셜미디어에 유포됐다. 맨체스터 테러 현장에 있지도 않았는데 난데없이 죽었다는 소문이 확산되자 그는 당시 "나 안 죽었어요"라는 내용의 '비디오 성명'을 제작해 공개했다.
 
라스베이거스 총기 참사 직후 "희생됐을 수 있다"며 소셜미디어에 유포된 한 유투버의 사진.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BBC 웹사이트 캡처

맨체스터 테러와 라스베이거스 참사에서 잇따라 '가짜뉴스'의 주인공이 돼버린 이 유튜버의 사진처럼 희생자 및 테러범과 관련한 가짜 정보가 참사 직후부터 소셜미디어에 쇄도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미국 코미디언 샘 하이드도 이 유튜버와 비슷한 처지가 됐다. 그가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에 희생됐다는 글과 사진이 소셜미디어에서 엄청난 페이지뷰를 기록하며 확산됐지만, 역시 거짓 정보였다. 하이드는 2015년 오리건주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에 15명이 숨졌을 때도 사망했다는 가짜뉴스가 나돌았다. 당시 CNN조차 방송에 그의 사진을 내보내며 희생자로 보도했을 정도였다.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범과 관련된 가짜뉴스도 자극적인 이미지와 함께 확산됐다. 야산에서 남성 너댓명이 자동소총 등 총기를 손에 들고 촬영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한 사람은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용의자들이 함께 찍은 극소수 사진 중 하나"라는 설명을 붙였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경력까지 수록된 이 정보는 라스베이거스 사건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공격수 에덴 해저드 등 유명 운동선수가 라스베이거스에서 희생됐다는 가짜뉴스도 잇따랐다. BBC는 대형사건이 가짜뉴스의 홍수로 이어지는 현상은 이미 '공식'처럼 굳어져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관련 정보를 찾는 사람이 급증하는데 사실 확인은 쉽지 않은 사건 초기를 노려 이 같은 허위 정보가 유포되곤 한다는 것이다.

BBC는 왜 이런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뜨리는지 묻기 위해 온라인 메신저 등으로 계정 소유자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응답해온 사람은 없었다고 전했다. 

◇ 테러마다 “우리가 했다”… ‘양치기 소년’ 같은 IS 

IS는 2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을 자신들의 소행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IS 선전매체 ‘아마크’는 라스베이거스 총격범이 몇 달 전 이슬람교로 개종한 ‘병사’라며 “그는 우리에게 맞서는 국가를 타깃으로 삼으라는 부름에 응해 이를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AP통신은 “아마크가 범인 스티븐 패덕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고 자신의 소행이란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패덕은 라스베이거스 음악축제에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맞은편 호텔 32층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최소 59명이 숨지고 500명 이상이 다쳤다. 패덕은 네바다주 출신의 백인 남성이다. 범행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범인이 사망해 범행동기를 쉽게 밝혀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IS가 “그 사람은 우리의 전사”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IS가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의 배후를 자처하며 소셜미디어에 게재한 글. 트위터 캡처

그러나 미 수사당국은 패덕이 국제 테러조직과 연관돼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애런 루스 FBI 특별수사관은 “현 시점에선 국제적인 테러조직과 어떤 연계점도 없다는 게 결론”이라고 말했다. 현재 IS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와 정황은 없다. 현지 경찰은 패덕을 ‘외로운 늑대’로 추정했다. 테러단체 조직원이 아닌 자생적 테러리스트란 뜻이다. 또 ‘사이코패스’ 성향을 갖고 있었다는 추측도 제기됐다. 

IS는 지난해부터 발생한 대규모 테러 사건에서 거의 대부분 목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독일 크리스마스시장 트럭 테러, 올 4월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총기 테러, 5월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 테러, 8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차량 테러, 9월 영국 런던 지하철 폭발물 테러, 10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등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참사가 발생하면 예외 없이 배후를 자처했다. 

그러나 IS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테러라고 입증된 경우는 거의 없다. IS의 성명이 나올 때마다 각국 안보 당국은 관련성 검증에 나서지만 뚜렷한 결과물이 발표된 적은 없었다. 매번 똑같은 패턴으로 성명이 나오고 있어 이런 사건을 ‘선전’에 활용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패퇴하는 처지여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우리가 했다”며 주장하고 나선다는 것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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