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심진경의 명작은 시대다] ‘자유부인’이라는 공공의 적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는 숨가쁜 격동과 변화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한국문학은 언제나 그런 현실의 변화에 민감했다. 한국문학은 변화하는 한국인의 삶과 운명을 들여다보는 창이었고,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는 대중들의 불안과 욕망을 반사하는 거울이었다. 그것은 또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운동에 자기를 내던지는 결단의 무기이기도 했고 소망하는 미래를 꿈꾸는 통로이기도 했다.
 
해방 후 한국소설은 그렇게 당대의 현실 및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고 소화하면서 시대와 함께 호흡했다. 문학사의 중요한 소설들은 그럼으로써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고 또 대중들의 삶의 감각과 소망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시대의 창이 되었다. 명작은 그렇게 탄생한다. 시대의 정신과 공기를 문학적으로 승화에 뛰어난 문학적 가치를 일군 소설, 그리하여 현재에도 보편적 가치를 발하는 소설, 그것이 명작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를 가로질러 시대와 호흡했던 명작들을 새롭게 조명한다. 시리즈는 부부 문학평론가 김영찬 심진경씨가 번갈아 쓴다.



영화 ‘자유부인’에 등장하는 댄스홀 장면. 그 당시 성행하던 댄스홀은 여성에게 해방의 자유와 일탈의 유혹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아래 사진 왼쪽부터 영화 속 여주인공 오선영이 판매책임자로 일하던 파리양행. 향수 화장품 등 외제 사치품을 파는 이곳에서 오선영은 욕망에 눈 뜬다.
1954년 출간된 ‘자유부인’ 책 표지, 1956년 개봉한 한형모 감독의 영화 ‘자유부인’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필자 제공



정비석(1911∼1991)의 ‘자유부인’은 1954년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자유부인’은 원래 150회로 기획되었으나 215회로 늘려 연재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렸으며, 연재가 끝나자 신문 가판이 5만 부나 줄어들었을 정도로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얻었다. 게다가 연재가 끝난 직후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곧바로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져 더욱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 특히 영화 ‘자유부인’은 ‘최고급품’, ‘댄스는 민주 혁명의 제 일보’, ‘자유부인’ 등의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
 
이 유행어들은 새로운 미국문화의 유입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한 전후 한국의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1950년대 한국은 ‘꿀꿀이 죽’으로 연명해야 할 만큼 가난한 나라였지만 미국의 원조물자와 미군 피엑스에서 흘러나온 미제물건이 넘쳐났다. 게다가 미도파백화점과 동화백화점이 개점해 사치품 고급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대다수 한국인들의 물질적인 욕망은 더욱 부추겨지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미군정의 영향으로 댄스홀이 성행하면서 중· 상류계층 여성들의 사교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고급품과 댄스로 상징되는 미국문화의 급격한 유입은 많은 사건 사고를 야기하기도 했는데, 대개는 밀수나 간통과 관련된다. 실제로 그 당시에 부산에서만 한 달에 100건이 넘는 밀수가 적발되었으며 밀수에 손을 댔다가 사기를 당해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다.
 
‘자유부인’의 배경에는 그런 현실 속에서 당시 큰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던 ‘춤바람’의 유행이 있다. 그와 관련해 특히 박인수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스캔들이었다. 1955년에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된 박인수는 2년간 댄스홀에서 만난 70여명의 여성과 관계를 가졌는데 상대 여성들이 모두 규수집 장관집 자제들과 이화여대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정작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 피해 여성들이었다. 결국 박인수는 무죄 석방되는데, “순결한 여성의 정조만을 법은 수호한다”는 말을 낳은 이 사건은 댄스홀에 가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더욱 공고히 한 사건이었다.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사치와 향락, 성적·도덕적 타락이 범람하는 이러한 전후의 서울을 배경으로, 서로 이질적인 것들이 마구 뒤섞이고 화학작용하면서 새로운 가치와 도덕률을 만들어가는 세태를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자유부인’은 춤바람이 난 교수 부인 오선영의 탈선을 묘사한다. 소설에서 오선영의 탈선 상대는 신춘호 백광진 한태석이라는 이름의 남자로, 그녀가 이 세 남자들과 차례로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그대로 소설의 플롯이 된다.
 
문제는 이들 세 남성인물이 각각 그 당시 많은 논란이 되었던 부정적인 시대상을 구현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즉 그들은 각각 사치와 향락, 도덕적 타락, 정·재계의 비리 등을 상징적으로 구현하는 존재들이다. 이는 그들의 별칭이 ‘바람둥이’(신춘호) ‘협잡꾼’(백광진) ‘사바사바 대장’(한태석) 등이라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오선영의 탈선과정은 바로 이 향락과 사기, 음모와 아첨이 난무하는 타락한 사회 현실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 이 남자들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는다. 바람둥이는 미국유학을 계기로 개과천선하고, 사기꾼은 어떤 피해도 입지 않은 채 도망가고, 오선영을 타락의 종착지로 이끈 사바사바대장은 언제나처럼 아첨과 아부로 부인과 화해한다. 그 대신 오선영과 그녀의 동창생인 최윤주가 이 모든 죄의 대가를 치른다. 오선영은 집에서 쫓겨나고 최윤주는 낙태 파산을 거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유부인’에서 작가가 그리는 것은 혼란스런 전후의 사회적 변화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두려움과 불안감 거부감이 뒤섞여 있는데, 그 불안과 동요는 이 소설에서 여성의 성적 타락과 도덕심 붕괴, 사치와 향락, 허영을 비난함으로써 해소된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자유부인’이라는 형상은 그런 전후의 극적인 사회변화가 야기하는 불안감과 공포심을 해소하기 위해 선택된 희생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렇듯 이 소설은 당대의 부정적 상황을 그대로 여성의 성과 육체 위에서 반복하고 모방함으로써 현실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여성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렇게 전후의 혼란으로 야기된 모든 잘못은 여성에게 돌려진다.
 
‘자유부인’의 여성인물들은 타락하고 혼란스러운 현실의 상징이다. 여주인공 오선영은 타락한 남성들과의 만남을 통해 당대 사회의 악덕과 문제를 재연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반면 작가가 그녀의 남편인 교수 장태연을 그리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그는 권위 있는 (사회적) 가부장의 지위를 회복함으로써 그러한 문제적 현재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미래를 상징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장태연으로 상징되는 가부장 남성의 문제해결 방식은 옛것의 고수와 복원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가 한글문법으로 상징되는 한민족 고유의 오랜 정신적 가치를 고집스럽게 고수하는 데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소설 결말 부분에서 장태연은 국회 공청회 연설에서 그 당시 실제로 이승만이 주창한 ‘한글 간소화 운동’에 대한 반대를 표명한다. 한글간소화운동이란 예전 구한말 성경 맞춤법으로 돌아가 맞춤법을 지킬 필요 없이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자는 주장이었는데, 심지어 영어의 알파벳처럼 자음과 모음을 풀어서 쓰려는 시도도 있었다. 장태연은 이에 맞서 기존 한글 문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작가는 그러면서 고리타분하고 봉건적인 한글학자 장태연을 “영웅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하여 오선영이 남편의 용서를 받고 “그리운 옛집으로!” “그리운 옛품으로” 향하는 소설의 결말은, ‘옛집’과 ‘옛품’으로 상징되는 전통적 가치의 부활과 재발견만이 타락한 현재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소설에서 타락한 현재가 여성의 것으로 그려졌다면, 여성으로 인해 타락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거와 미래의 가치는 그렇게 남성의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결국 ‘자유부인’에서 전후의 혼란 속에서 직면하게 된 낯설고 새로운 가치는 그렇게 효과적으로 제거되거나 억압된 채 익숙하고 낡은 가치체계 속에 담겨 왜곡되고 만다. 그러한 왜곡을 위해 작가가 동원한 방법론은 “여자들의 자유와 행복이란 오로지 결혼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성립”한다고 믿는 낡은 남성 중심적 의식이다. 이 점은 작가의 현실인식과 전망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분명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분명 ‘자유부인’은 ‘자유부인’이라는 새로운 여성이미지를 창조하고 그로써 다양한 사회현실의 문제를 진단하고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시대감각을 발휘한 소설이다. 그것은 아마도 정비석의 대중적 감각과 정치적 감각의 조화에서 비롯된 것일 터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감각이 새로운 현실인식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관습적 통념에 갇히고 만 것은, 결국 그의 여성의식의 수준이 사회적 통념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낡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심진경
 
소설가 정비석은
80년대 베스트셀러 ‘소설 손자병법’의 작가
 
1932년 일본 도쿄에 있는 니혼(日本)대학 문과를 중퇴하고 귀국한 후 35년 동아일보에 시를 발표하며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소설로 전향해 단편 ‘졸곡제(卒哭祭)’가 동아일보에 입선되고 37년 조선일보에 ‘성황당’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원시적 자연과 토속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성황당’, 종교적 갈등과 인간의 고뇌를 그리는 ‘제신제’가 해방 이전의 대표작이다. 정비석이 본격적으로 인기작가로 떠오른 것은 1950년대에 들어서다. 특히 당시 ‘춤바람’으로 대표되는 퇴폐적인 서구사조의 유행과 도덕의 타락을 묘사한 ‘자유부인’은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산유화’ ‘낭만열차’ ‘비정의 곡’ 등 대중적 인기작들을 연이어 발표했고, 84년에는 ‘소설 손자병법’을 써 인기를 얻기도 했다.
 
필자 김영찬·심진경은…
김영찬
 
1965년 경남 진주 출생. 성균관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학평론으로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근대의 불안과 모더니즘’ ‘비평극장의 유령들’ ‘비평의 우울’ 등이, 역서로 ‘성관계는 없다’ ‘근대성의 젠더’ 등이 있다.
 
심진경
 
1968년 인천 출생.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예대·서강대 강사. 문학평론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한국문학과 섹슈얼리티’ ‘여성, 문학을 가로지르다’ ‘여성과 문학의 탄생’, 역서로 ‘근대성의 젠더’ 등이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