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지지후보 결정은 좀 더 따져본 뒤에

19대 대선이 도둑처럼 다가왔다. 선거일인 5월 9일은 18대 때보다 7개월이나 빠르다. 선거 후 개표가 끝나면 그날로 당선인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다고 하니 새 정부 출범도 11개월이나 앞당겨진다. 대선 예비주자들은 말할 나위도 없고 지켜보는 우리도 숨이 가쁘다.

각 당이 나름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나 당의 대선 후보를 뽑는 내부 경선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대선 주자들의 전체 진용은 다음 달 초나 돼야 갖춰질 전망이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모자란 탓에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시간이 부족해도 새 정부의 대통령을 찾는 역사적인 행사를 삽시간에 콩 볶아내듯 처리해서는 안 된다. 현직 대통령이 중도 낙마할 경우 국정공백을 60일로 최소화한 헌법(68조)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상대적인 시간을 확보하자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국민의 몫이고, 유권자들이 해야 할 바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의 각성이 절실하다. 기존 투표행태부터 바꿔야 한다. 과거 우리는 후보들의 출신 지역을 따졌고 소속 정당만을 눈여겨봤다. 그리고 무의미한 질문만 거듭했다. ‘누구를 찍어야 되나’ ‘누가 될 것 같나’ 등의 질문은 지금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 후보 평가기준을 새롭게 다시 짜지 않으면 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변화를 가장 강하게 바라는 이들도 유권자들이다. 사실상 지난해 11월부터 국정마비 사태가 이어지면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데다 국정농단을 불러온 제도적 문제, 이른바 적폐 청산에 대한 요청과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기대를 현실로 만들자면 철저한 후보검증은 당연하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가 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후보들은 대부분 나름 대통령의 꿈을 다져온 터라 자신들의 비전, 정책목표, 지향점 등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데 대단히 노련하다. 유권자들이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이에 대응하자면 유권자들도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예컨대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1919)에서 정치가의 중요한 자질로 ‘신념(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꼽았다. 신념과 책임감은 상호보완적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베버에 따르면 신념을 지나치게 앞세우면 결과에 소홀해지기 쉬워 무책임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반면 책임감이 너무 강하면 이런저런 예측 결과를 두려워한 나머지 아무 일도 추진하지 못해 되레 무능하게 될 수 있다.
 
신념과 책임감의 조화에 더하여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정책의 정합성이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반짝거리더라도 현실성이 부족하고 실현가능성이 없다면 공약(空約)일 뿐이다. 예산 조달 방안이 결여된 정책도 마찬가지다. 밑도 끝도 없는 수치목표 등도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앞세워 볼 때 진보냐 보수냐 하는 구분은 무의미하다. 소명감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최소한의 소명의식조차 없다면 그야말로 직업정치가로서 실격이다. 문제는 이러한 우리의 기준을 채워주는 후보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난제를 말끔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백마 탄 기사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운 기준에 가장 가까운 이를 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행여 지지후보를 이미 심중에 굳힌 이가 있다면 좀 더 꼼꼼히 따져볼 것을 권하고 싶다. 19대 대선이 도둑처럼 왔다가 훌쩍 지나가는 것처럼 빠르게 진행되고는 있지만 점검할 시간은 아직 넉넉하다. 작정은 투표 직전에 해도 늦지 않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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