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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기자 말고 할 게 있었을까"


'프리즌'에서 소름끼치는 악(惡)의 얼굴을 보여준 한석규. 그는 "예술은 거창한 게 아니다.
무언가를 보고 온몸이 쩌릿쩌릿한 게 바로 예술적 경험"이라며 "남들에게도 그런 느낌을
선사해주고 싶어서 연기를 한다"고 말했다. 쇼박스 제공


“내가 배우 말고 할 게 있었을까. 아, 음악. 중·고등학교 때 중창단에서 노래를 좀 불렀어요. 근데 음악은 돈이 많이 든다더라고(웃음). 고2 때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봤어요. 그때 온몸에 전율이 일었죠. 지금도 그 노래들이 다 생각나요. 럴럴러럴러….” 

인터뷰 테이블에 마주앉은 배우 한석규(53)는 밑도 끝도 없이 얘기를 시작했다. 취재진이 건넨 명함을 물끄러미 보다 문득 “난 기자라는 직업을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며 입을 뗐다. 자신의 인생을 뒤바꾼 ‘예술적 경험’을 회상하며 온화하게 미소 짓던 그는 여전히 기억하는 곡 한 소절을 흥얼거렸다. 

봄 햇살이 따뜻했던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한석규를 만났다. 영화 홍보차 마련된 자리였지만 그런 건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 “몰라. 그냥 나 혼자 떠드는 거예요. 인터뷰라는 거 별 거 있어요? 허허허. 난 동료들에게 항상 이걸 묻거든. 왜 연기자가 됐느냐고. 사연들이 다 기가 막혀요. 내 케이스가 제일 재미없죠.”
 
한석규 특유의 젠틀함은 그가 출연하는 작품에 그대로 묻어나곤 한다. 지난해 SBS 연기대상을 안겨준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도 그랬다. 한데 오는 23일 개봉하는 ‘프리즌’에선 다르다. 교도소 내 권력 다툼을 다룬 영화에서 그는 정부 고위층과의 뒷거래로 죄수들의 왕 노릇을 하는 익호 역을 맡았다. 그의 연기인생 중 이토록 극악무도한 악역은 처음이다. 

“전작 ‘뿌리 깊은 나무’(SBS·2011)의 김영현 작가에게 ‘군주론’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어요. 섬뜩하고 무서운 책이죠. 통치자에게 ‘우매한 자들은 이렇게 다스려야 한다’고 아첨하는 내용이니까요. 그 책을 읽으며 느꼈던 걸 ‘프리즌’을 통해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한석규는 “이쪽 계통 사람들이 하는 일은 온통 비유와 풍자다. 가짜를 통해 진짜의 정곡을 찌르는 게 우리의 일”이라며 “교도소라는 공간을 통해 폭력과 지배,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리즌’에서 이 시대에 맞닿아있는 지점을 분명히 읽었다”고 말했다. 

그는 신인 감독과의 작업을 유독 즐긴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 때문. ‘프리즌’ 역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던 나현 감독의 데뷔작이다. “새로운 한국영화가 나와야 한다는 마음인 거죠. 뉴아메리칸 시네마(1960∼70년대 미국의 실험 영화 운동)처럼 ‘뉴코리안 시네마’라도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화제는 자연스레 한국영화계 전반에 대한 쓴소리로 이어졌다. 흥행될 만한 영화만 제작되다 보니 점차 장르의 다양성을 잃어가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그는 “분명히 다시 (재정비)해야 될 때인 것 같다”면서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결국 사람의 문제다. 무엇이 중요한지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1991년 MBC 20기 공채탤런트로 연기에 입문한 한석규는 ‘접속’(1997)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쉬리’(1999) 등 한국 영화계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겨왔다. 연기의 제왕이라 칭송받는 그이지만 정작 본인은 “내 연기 결과물을 보고 만족한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저 ‘쓸만하네’ 싶은 컷이 조금씩 늘어나는 정도란다.

“연기의 해답은 영원히 못 찾을 거예요. 그걸 찾으려 발버둥치는 과정이 중요한 거죠. 이 일은 완성이라는 게 없어요. 사람이 하는 거니까.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왜 저런 일을 벌였나.’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에 매달릴 뿐입니다.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야죠.”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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