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생명 살리는 놋뱀, 그 해독의 뱀은 어디에 있는가

“비명과 절규와 신음과 통곡이 우주 가득히 피어오르고 불뱀에 물려 썩어진 상처들에서 흐르는 썩은 피의 강이 악취를 풍기면서 연기처럼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구리 뱀은 어디 있는가. 청동의 뱀은 어디 있는가. 그 해독의 뱀은 어디 있는가. 그들은 몸부림치며 울부짖고 있었다.…드디어 나는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다리가 썩은 채 마치 뿌리 없는 나무처럼 비틀거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나는 그들 속에서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가장 절망적인 상처를 입은 채 미친 듯이 허덕거리고 있는 나를….”
 
한국기독교문학에서 주목받는 작품 중 하나인 백도기(78)의 대표작 ‘청동의 뱀’에 수록된 마지막 문단이다. ‘청동의 뱀은 어디 있는가. 그 해독의 뱀은 어디 있는가’란 절규는 세상 어디에도 구원에 이르는 길은 없으며, 그것은 오직 절대자에게 찾아야 한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그 해독의 뱀은 구약성경 민수기에 나오는 청동의 뱀을 가리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민 21:8∼9)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다보고 생명을 찾은 놋뱀은 바로 잃어버린 믿음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백 작가는 비판적 자기성찰을 통해 양심을 찾아가는 ‘신앙적 주체 인식’을 탐구해 온 작가다. 그는 한국 현대사가 지닌 아픈 상처 속에서 작가로서, 목회자로서 권력과 책임에 대한 고민이 그 누구보다 깊었다. 1969년 단편 ‘어떤 행렬’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단편 ‘청동의 뱀’, 장편 ‘가룟 유다에 대한 증언’, 중편 ‘바벨의 소리’ ‘가시떨기나무’ ‘우리들의 불꽃’ ‘불타는 제물’ 등을 발표했다. 장편 ‘등잔’은 ‘제1회 한국기독교문학상’, ‘우리들의 불꽃’ ‘책상과 돼지’는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작가가 1972년부터 정착해 살고 있는 성곽의 도시 경기도 수원을 지난 1일 찾았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그에게 수원은 제2의 고향이다. 그는 이곳에서 목회와 집필에 몰두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작가가 수원 팔달문 인근에 오픈한 카페 ‘등잔’은 70년대 당시 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다. 차를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던 문화명소로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그가 82년에 설립해 26년간 목회했던 한민교회는 수원 화성 한복판에 있었다. 화성행궁 옆에 있는 신풍초등학교를 지나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한민교회를 만날 수 있다. 예배당은 아담한 3층 건물이다. 온통 담쟁이가 둘러싸고 있어 사계절이 아름다운 곳이다. 한민교회는 골목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행궁동 ‘왕의 골목여행’ 1코스에 들어 있다.
 
교회가 있는 골목길을 걸으며 현실의 문제와 권력의 속성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작가의 대표작 청동뱀의 줄거리를 떠올렸다.

 
■‘청동의 뱀’은 구원의 상징
 
74년 발표한 청동의 뱀은 위선과 악덕으로 가득 찬 한 가정의 문제에 휘말려 우유부단하게 처신하는 한 목회자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목사라는 특수한 신분을 통해 우리 모두의 삶, 그 삶을 괴롭히는 이 세계의 진상을 폭넓게 진술한다.
아버지에게 칼을 품고 사업자금을 대라고 협박하는 장남, 형의 자가용을 담보로 자금 지원을 강요하는 차남, 돈을 대주지 않는다고 아들 회사의 수위실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이으며 위협하는 아버지, 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아들을 복수심 때문에 키우는 어머니, 부모가 애인과의 결혼을 반대한 것 때문에 광증을 일으키는 서자 삼남, 시동생이 사탄이라고 저주하며 기도하는 형수 등 탐욕의 세계에 물든 이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청동의 뱀은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보기만 하면 살 수 있는 구원의 상징이다. 단지 바라보기만 하면 불뱀의 상처에서 완전하게 치유될 수 있다. 타락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첫 부임지에서 만난 윤치병 목사
 
신학교를 갓 졸업한 한 젊은 전도사 ‘나’는 시골 작은 교회의 청빙을 받기 전 교회 상황을 알아보려고 방문했다가 너무 열악한 교회 현실을 만난다. 정신장애를 가진 아들과 함께 살며 한평생 교회를 섬겨온 늙은 목사를 보고선 그냥 서울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러나 목사의 아들이 마침 내가 타려던 버스에 치여 죽는다. 목사가 아들의 시체를 업고 가는 모습이 꼭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는 걸 연상케 한다.
 
운전사와 교인들이 달려들어 그 목사에게 시체를 대신 메고 가겠다고 졸랐으나 그는 듣지 않는다. 나는 견딜 수 없어 그의 앞에 나가 손을 벌린다. 그때 목사는 나에게 아들의 시체를 맡긴다. 나는 왜 하필 나에게만 아들의 시체를 맡기는가에 대한 해답을 마음속으로 발견한다. 떠나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작가의 등단작 ‘어떤 행렬’의 줄거리다. 작품 속 노 목사는 그의 첫 부임지 금마복음교회에서 만난 윤치병 목사다.
 
작가의 소설엔 고통이 편재해 있다. 그는 어떤 행렬에서 자신의 문학적 테마의 원형인 고통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노목사가 아들의 시체를 업고 갈 때 젊은 목사가 ‘십자가다’ ‘저건 십자가다’라고 외치는 데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전율한다.
 
“나는 두려움 없이 피투성이의 사내를 들쳐 메었다. 목사가 내게 보여준 감사와 신뢰가 내게 용기를 준 것 같았다. 야위고 메마른 사내의 몸은 괴히 무겁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목사를 혼자 내버려두고 가는 일은 이미 불가능하다고. 그가 아들의 시체를 내게만 안겨준 의미를 나는 알 것 같았다. 내게만 그는 자신의 고통을 감추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똑같이 고통을 겪고 있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아니 그보다도 그 고통을 극기해야 할 숙명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와 나는 숙명적인 기반으로 서로 얽혀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을 들었다. 길 위쪽에 목사관이 보이고 그 뒤로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동산이 보였다. 이런 추위에도 불구하고 햇살 때문일까. 눈 녹은 자국마다 녹색의 풀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문득 목초원지를 연상했다.”(‘어떤 행렬’ 중에서)
 
■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
 
또 다른 작품 ‘골짜기의 종소리’에서 작가는 고통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노목사가 어린 손자에게 하는 말이다. “고통의 의미가 어려워서 이해 못하는 사람은 없지,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누구나 다 고통을 겪고 있으니까. 고통을 통해서 성장할 수 없는 사람에게 고통은 정말 참혹한 비극이거든 그런 사람은 고통의 진정한 가치는 모르지. 아무리 고통을 겪는다고 해도 그 속에서 참다운 의미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결코 불행한 일은 아니란다.”(‘골짜기의 종소리’ 중에서)
 
백 작가는 제도화된 기독교는 진정한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우상 숭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며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진정한 신앙을 추구한다. 그는 뿌리가 없는 나무들처럼, 거센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는 눈발처럼 근원을 잃고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현대인들에게 회복을 촉구한다. 고난을 통해 믿음을 회복하길 바란다. 이는 그가 ‘기독교문학이란 간증적 문학이 아닌 예언적 문학이 돼야 한다’고 선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현재 임평자(77·농촌여성신문 사장) 사모와 수원 우만동 한 아파트에서 묵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백도기처럼 생각하기]
 
"작가는 현실을 투시해 정직하게 증언할 의무"
 
"아버지는 광복되던 날 천장의 한 귀퉁이를 찢어내고 그 안으로 손을 디밀어 태극기를 꺼내 들고 우셨어요. 그런 아버지 모습은 제 삶의 모형이었습니다. 부친은 복음교단 제2대 감독을 지내고 6·25 때 순교한 백남용 목사입니다."
 

지난 1일 수원 팔달구 우만동 자택에서 만난 백도기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처럼 살고 싶었으나 한때 '신이 선하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거나, 전능하다면 선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회의에 사로잡혔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런 회의는 그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 일선에 뛰어들면서 해소됐다.
 
그는 1964년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을 졸업하고 첫 부임지 전북 익산 금마복음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 윤치병 목사를 6년간 모시며 많은 것을 배웠다. "윤 목사님은 일본의 고베신학교 출신으로 고창고보에서 영어와 역사를 가르치던 분이셨는데 목회를 하시며 평생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의 친구로 사셨지요. 당시 한신대 구약학 교수였던 문익환 목사가 설교 중에 '백도기가 지금 시골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는 문학을 통해 인간에게 기여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오랜 기간 고민했다고 말했다. "작가란 자기 시대의 역사적 현실을 투시해 우리의 '삶의 자리'가 어디에 처해 있는가를 정직하게 증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작가는 증언을 통해 오늘의 어두운 현실에서 우리 자신을 구제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자변해 왔어요."
 
또 그는 신학과 문학은 궁극적으로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간다는 점이 일치한다고 믿는다.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어떤 논리보다 더 쉽고 빠르게 사랑의 핵심을 깨달을 수 있듯이 문학적 형태가 삶을 아름답게 하는 유익한 기능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수원= 글·사진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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