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Matthew 5:4)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정치적 구원이 아닌 죄로부터의 구원임을 역설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애통해하는 사람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세상의 논리나 이치와는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행복의 기준이 많음과 높음, 그리고 즐기는 것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낮은 자는 높은 자를 보고 행복하겠구나 느끼고, 적게 가진 자는 많이 가진 자를 보고 행복하겠다고 말합니다. 병든 자는 건강한 자를 향해 행복하겠다고 말하고, 좁은 집에 사는 사람은 넓은 집에 사는 사람을 보고 행복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하는 행복은 그리스도인에게 애통해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위로하다’는 뜻의 헬라어 ‘파라칼레오’는 ‘자기 곁으로 부르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비난을 당하고 상처를 입고 두려움에 떨더라도 나를 위로하려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가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나를 안아 주시며, 내가 상처를 잊고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나를 보호하시며, 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홀로 걸어갈 때조차도 혼자 두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다는 사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김도윤 목사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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