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성과 기대 버리고 기부 문화 단계적 확장 공들여야”

최근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만난 이규현 목사. 이 목사는 “나눔은 타인과 세상을 살리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을 살리는 일”이라며 “나누지 않으면 인간은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산=신석현 포토그래퍼


국민일보가 ㈔월드휴먼브리지와 벌이는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기부’(세아기) 캠페인은 그동안 많은 NGO가 도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유산 기부 운동을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펼쳐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그렇다면 세아기 캠페인이 얼마간 성공을 거뒀을 때 세상엔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한국교회를 보는 한국 사회 일부의 비딱한 시선도 달라지지 않을까.

최근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만난 이규현(66) 목사는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이걸(세아기 캠페인) 통해서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높이겠다거나, 칭찬을 받겠다는 식의 생각을 해선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칭찬을 받지 못하더라도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며 “교회는 항상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를 만난 것은 수영로교회가 세아기 캠페인에 참가한 교회 중 하나여서다. 지난 3월 별세한 고(故) 정필도 원로목사가 1975년 개척한 수영로교회는 부산·경남 지역을 대표하는 대형 교회다. 이 목사는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세아기 캠페인이 갖는 의미와 자신의 목회 철학 등을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이번 캠페인에 동참하기로 한 계기가 궁금하다.

“(월드휴먼브리지 대표인)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의 권유가 컸다. 김 목사로부터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그 취지에 공감했다. 한국 사회나 한국교회에 (유산 기부 운동을 벌일)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수영로교회가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앞으로 적극적으로 동참할 생각이다.”

-세아기 캠페인은 한국교회가 벌이는 쉽지 않은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려운 프로젝트인 것은 사실이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특히 자녀에게 유산을 전부 물려주는 게 당연시되는 유교 문화권에서 재산 일부를 사회에 내놓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일부 교회와 국민일보 같은 언론사에서 벌이는 공동 캠페인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성급하게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스텝 바이 스텝’으로 유산 기부 문화를 조금씩 확장시킨다는 생각으로 캠페인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세아기 캠페인이 성과를 낸다면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더 떨어졌다. 세아기 캠페인을 통해 이 신뢰도를 얼마쯤 회복할 거라는 식의 생각을 해선 안 된다. 한국교회 신뢰도 문제를 풀기 위해선 교회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간 한국교회는 성장중심주의에 매달렸다. 배타적 공동체, 공공성을 잃은 공동체처럼 여겨질 때도 많았다. 실제로는 교회가 그렇지 않은 데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순수하게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이유 탓에 교회의 ‘섬김’이 왜곡된 모습으로 알려지고, 결국엔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성경적 차원에서 기부가 갖는 의미가 있다면.

“성경 말씀은 개인 구원의 중요성을 전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독교가 꿈꾸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다. 한국교회는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공의가 흐르는 나라이며 약한 자나 소외된 자도 함께하는 나라다. 기부의 의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나눔’은 교회의 존재 이유다. 수영로교회가 벌이는 모든 사역의 핵심도 이거였다. 우리 안에 있는 뭔가를 세상에 흘려보내는 것. 교회가 (교인 수나 헌금액 등) ‘숫자’를 자랑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얼마나 이웃을 섬기느냐, 얼마나 나누느냐가 교회의 핵심이 돼야 한다.”

-세아기 캠페인이 성공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한국인은 정이 많고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이 고운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기부를 독려하려면 우선 기부금을 어디에 쓸 것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정필도 목사가 인터뷰 자리에 동석했다면 어떤 말을 했을 것 같은가.

“원로목사님은 삶 자체가 기부였다. 물질을 세상의 그늘진 곳으로 끊임없이 흘려보낸 분, 물질이 교회에 고이는 일이 없도록 한 분이 정 목사님이었다. 생전에 목사님은 돈을 벌어 사치만 일삼는 것은 믿는 사람의 태도가 절대 아니라고 신랄하게 말씀하시곤 했다. 아마 세아기 캠페인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정말 적극적으로 함께했을 것이다.”

-한국교회에 전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면.

“한국교회가 떠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성장주의다. 성장주의는 개교회주의로, 개교회주의는 교파주의로 연결된다. 이런 분위기에선 교회에 공공성이 깃들기 힘들다. 물론 과거 한국교회가 지향한 성장주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아이가 성장을 멈추면 성숙의 단계로 진입하듯이 말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외형주의보다는 성숙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겸허한 태도로 세상을 대하면서 공교회의 의미를 되새기고 내적 깊이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부산=특별취재팀 조재현 우정민 PD

박지훈 최경식 신지호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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