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7월 24일]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본질이다



찬송 : ‘사랑하는 주님 앞에’ 220장(통 278)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도행전 6장 1~4절


말씀 : 예루살렘교회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구제 활동을 벌였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헬라파 유대인 출신 과부들이 구제 대상에서 빠진 것입니다. 사도들이 말씀도 전하고 구제 활동까지 맡다 보니까 실무적인 착오가 생긴 것입니다. 사도들은 교회 활동을 전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구제 업무를 전담할 일꾼들을 택합니다. 이분들이 바로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입니다.

구제 업무는 집사들에게 맡기고 사도들은 말씀 선포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4절)

이 구절을 헬라어로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말씀 사역’이라는 말에서 ‘사역’이 ‘디아코니아’로 나와 있었습니다. ‘디아코니아’는 ‘섬김’ 혹은 ‘봉사’라는 뜻이지요. 1절의 ‘구제’라는 말도 역시 ‘디아코니아’입니다. 똑같은 ‘디아코니아’를 1절에서는 구제라고 번역하고, 4절에서는 ‘사역’이라고 번역해서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저는 지레짐작으로 말씀 사역은 말씀 선포(케리그마)려니 생각을 했다가 말씀 섬김(디아코니아)이라는 말을 읽고는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구제 사업은 섬김의 영역이고, 말씀 전하는 일은 선포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엄청난 오산임을 깨달았습니다.

충격이 가라앉은 다음에 정신을 수습하고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이 다 디아코니아라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구제하는 일도 디아코니아지만 말씀 전하는 일도 디아코니아입니다. 예배 참석하는 것을 비롯해 설교하는 것, 설교를 듣는 것, 찬송가 부르는 것, 교회 청소하는 것, 교인들 식사를 준비하는 것,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것이 다 디아코니아입니다. 교회 자체가 디아코니아입니다. 사도 바울은 ‘직분’이라는 말을 ‘디아코니아’라고 부릅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명예나 감투가 아니라 섬김의 직분입니다.

예수님의 삶 전체가 디아코니아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섬김(디아코니아)’에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디아코니아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는 디아코니아라는 개념 한 가지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너무 협소하지 않은가, 디아코니아 한 가지로 신학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분은 저의 궁금증을 말끔히 씻어 주었고, 교회의 본질이 ‘디아코니아’라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디아코니아’를 교회 활동의 한 부분으로만 생각하고, 집사님들이 하는 봉사 활동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디아코니아 신앙을 확립한 후에 그 신앙으로 교회를 섬기고 세상을 섬긴다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기도 : 하나님,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본받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오종윤 목사(군산 대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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