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7월 20일] 예수님이 언제



찬송 : ‘나 같은 죄인까지도’ 54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25장 31~46절


말씀 : 예수님의 비유와 가르침에는 자주 ‘뒤엎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내용이나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내용이 그런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는 선포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흔히 돈이 많고 부자로 사는 사람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그런 생각을 엎어버립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도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이 상종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의 등장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고, 그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아 주었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는 어떤가요. 경건한 바리새인과 멸시받는 세리를 대조시킨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고, 마지막에 세리가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통쾌한 뒤집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양과 염소의 비유’에도 뒤엎기가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 때 예수님이 모든 민족을 불러 모으고 판결을 내립니다.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35~36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입니다. 이것은 난처한 뒤엎기입니다.

우리는 주일을 잘 지켰는가, 십일조 생활을 제대로 했는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했는가, 이런 것을 기준으로 심판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모든 사람이 ‘언제 예수님이 그런 적이 있느냐’고 묻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신앙은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솟구치는 것’과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로 솟구치는 것은 예배와 기도와 찬양입니다. 사람들에게 뻗어 나가는 것은 배려와 돌봄과 섬김입니다.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온전한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늘로 솟구치는 일만 치중하다 보면 자칫 사람들에게 뻗어가는 일을 소홀히 하기가 쉽습니다.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면서 산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신앙은 무례한 기독교라는 비난을 받기에 십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런 약점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사람들에게 뻗어 나가는 일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언젠가 교인들에게 우리 교회 주일 학생의 3분의 1이 다문화가정 한 부모 가정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는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무관심한 까닭에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지요. 우리의 눈이 열려서 이들을 알아보고, 우리의 마음이 열려서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우리의 손을 뻗어서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최후의 심판 때 ‘예수님이 언제’ 하며 당황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그늘진 곳, 구석진 곳으로 우리의 눈길을 돌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오종윤 군산 대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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