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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크리스토퍼 안 추방 위기… 美 법원, 송환 결정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에 연루된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오른쪽)이 지난해 5월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건물 앞에 있는 명패. AP연합뉴스


미국 법원이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진입 사건 가담자인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토퍼 안(42)의 송환을 결정한 것으로 9일(현지시간) 확인됐다.

법원은 그의 혐의가 범죄인 인도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지만 “송환될 경우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며 미국 정부가 송환을 거부하는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하게 호소했다. 판례에 따라 송환 거부를 결정할 법적 재량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라는 설명도 했다. 미 사법부가 행정부에 송환을 막아 달라고 직접 요청한 것은 이례적이다.

국민일보가 단독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연방지방법원 진 로젠블루스 판사는 이날 “크리스토퍼 안의 혐의는 스페인과 맺은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른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그는 주거침입, 불법감금, 협박, 상해, 폭력을 수반한 강도, 조직범죄 등 6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로젠블루스 판사는 그러나 이 중 폭력을 수반한 강도와 조직범죄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나머지 4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로젠블루스 판사는 그러나 송환을 반대하는 장문의 의견서를 판결문에 포함했다. 52쪽에 달하는 판결문 가운데 14쪽이 크리스토퍼 안이 송환돼선 안 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로젠블루스 판사는 송환될 경우 북한에 의해 살해당할 위협이 높다는 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는 “북한은 호텔 벽에서 최고지도자의 포스터를 떼어냈다는 이유로 오토 웜비어를 고문 살해했던 테러 지원 국가”라며 “미 연방수사국(FBI)은 이미 북한이 크리스토퍼 안의 처형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스페인은 미국과 달리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어 입국이 자유롭고, 북한은 외국 땅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김정남)을 살해하는 등 국제테러 행위를 수행하기 위한 자원이 방대하다”고 강조했다.

로젠블루스 판사는 또 송환이 무의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페인 형사재판에서 증거는 증인을 통해 직접 증언돼야 한다”며 “당시 북한대사관 직원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송환돼 스페인에서 재판이 열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 정부가 악으로 인식하는 세력으로 인해 심각한 생명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안을 송환해 일어나지도 않을 재판을 기다리도록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라고 표현했다.

로젠블루스 판사는 “크리스토퍼 안은 6년 동안 해병대에서 명예롭게 조국을 위해 봉사했다. 모든 면에서 좋은 사람”이라며 “스페인에서 기소한 범죄조차 이타주의에 의한 동기가 부여됐다”고 칭찬했다. 또 “그는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인생의 상당 부분을 바쳤다”며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보석 조건을 단 한 차례도 위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판단에도 불구하고 송환 결정을 내린 것은 1심 재판부가 범죄인 인도 예외를 판단할 정치적 재량권이 없다는 판례 때문이다. 미국 판례에는 “범죄인을 인도 처분해야 하고 혐의를 유지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치안판사가 판단하면 이를 인도할지 결정하는 것은 국무장관”이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로젠블루스 판사는 “이 명백한 문장 때문에 법원이 인도적 예외를 적용할 수 있다는 크리스토퍼 안 주장을 마지못해 기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판사가 테러 지원국에 의해 암살될 가능성이 있는 미국 시민의 송환을 거부할 재량권이 없다는 것은 옳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며 “할 수만 있다면 나는 크리스토퍼 안의 재판이 미국에서 이뤄지길 요구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로젠블루스 판사는 그러면서 “나는 내가 지닌 권한이 너무 약해서, 왕따 국가에 의한 고문과 암살 위협에서 그를 구할 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판결문을 마무리했다. 크리스토퍼 안 측 변호인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즉시 항소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앞서 스페인 정부는 크리스토퍼 안이 2019년 2월 북한대사관에 진입한 ‘자유조선’ 소속 용의자 7명 중 한 명이라며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미 법무부는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스페인에 신병을 넘길 것을 사법부에 요청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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