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고싶은 설교] 거센 풍랑 몰려와도 믿음으로 뚫고 나아가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저 편으로 건너가고 계셨습니다. 그 때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무서움에 휩싸인 제자들은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께서 깨어 일어나셔서 바다를 꾸짖으시고 풍랑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아니 이 분이 누구시길래 이 분 앞에서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며 두려워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사건 통해서 우리의 인생이 어떠한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이야기 할 때 풍랑이 이는 바다, 폭풍이 내리치는 그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비유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온갖 풍랑들이 우리 인생 가운데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경험이 많다고, 아무리 지식이 많다고, 아무리 인생의 연륜이 길다고, 아무리 실력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이 풍랑을 피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질병의 풍랑이 다가오고, 때로는 물질적인 어려움의 풍랑이 다가오고 때로는 내가 예기치 못했던 사건과 사고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이 우리 가운데 닥쳐오게 되어서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는 그런 풍랑 가운데 우리가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내 밖에서만 풍랑이 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도 풍랑이 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그 말씀은 바로 ‘내 안에 있는 풍랑’에 관한 것입니다. 온갖 풍랑이 치는데 밖에서만 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도 풍랑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이 무서움이라는 것은 원문을 보면 두려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두렵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이 무서움, 두려움은 내 마음 안에 있는 풍랑입니다. 세상이 잠잠해도 내 마음에 풍랑이 일면 세상은 요동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흔들려도 내 마음이 요동하지 않으면 세상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광풍이 부는 상황 속에서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그 안에서 주무시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풍랑이 있는데 예수님의 마음은 잠잠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세상에 풍랑이 일 때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지 아니하시고 신앙의 문제, 영적인 문제로 보셨습니다.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믿음과 연결시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풍랑 속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을 말씀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면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을 이기는 실체적인 능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짜 믿음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일서 5장 4절

우리의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바로 우리 믿음의 유일한 대상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제자들이 풍랑과 광풍 속에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장면만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행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서 그 모든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음의 장으로 유명한 히브리서 11장은 그 답을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장 6절

첫째로 ‘주님을 믿는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광풍의 한가운데서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큰 광풍을 만나 두려움 속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배에 타고 계신 사실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축복은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풍랑이 닥쳐올 수 있습니다. 그 풍랑이 너무 커서 예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여전히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외로워 눈물을 흘리고 슬픔에 젖어 있는 순간에도, 또 헤어 나올 수 없는 큰 어려움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변함없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의 눈을 들어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을 믿는다’라는 말은 주님이 주님께 나아가는 자, 곧 주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을 찾게 되고 주님 앞에 간구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참 안타까운 것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깨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나서 더 이상 방법이 없자 예수님을 깨운 것입니다. 바닷물이 배에 차고 넘치고 다 죽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주님을 깨운 것입니다.

기도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나서 더 이상 할 것이 없을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해야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인생에 풍랑이 오기 시작할 때부터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제자들이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하며 주님을 깨웠고, 누가복음 8장에서는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매우 간절하게 부르짖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이 고백이 인생의 온갖 역경 속에서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순간, 풍랑을 만나 겪는 인생의 문제는 더 이상 우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인생의 문제를 주님께 맡겼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주님께서 해결하셔야 하는 문제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 50편 15절

주님은 환난 날에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건져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영화롭게 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시면 풍랑이 잠잠하게 됩니다. 요동치는 마음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 속에 잠잠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풍랑보다 약하고, 풍랑을 통제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풍랑이 찾아오면 무너질 수밖에 없고 먼저 두려움에 휩싸이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믿을 때 더 이상 풍랑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가 믿는 주님이 풍랑보다 더 크시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수많은 풍랑 속에 믿음의 눈을 들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인생에는 크고 작은 풍랑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풍랑보다 크신 주님이 한결같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늘 동행하시는 주님과 함께 굳게 서서, 우리의 삶 가운데 찾아오는 광풍의 두려움을 담대한 믿음으로 이기고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황덕영 목사
새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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