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트루디 (18) 혼혈아에 대한 편견에… 열 살 아들 “사는 게 힘들다”

트루디 사모의 첫째 아들 김요셉(왼쪽), 막내 요한 군과 둘째 딸 애설 양이 어린 시절 소파에 앉아 기도 손을 하고 사진을 찍고 있다.


요즘은 외국인을 차별하는 일이 덜하지만, 예전에는 혼혈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무척 심했다. 2남 1녀 세 명의 자녀들을 키우면서 다른 한국 아이들처럼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쳤지만 아이들 나름대로는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비교적 잘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결코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첫째 요셉은 늘 외국인 엄마에 대해 이중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다정한 어머니로 믿고 따랐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인과 한국인의 외모를 조금씩 닮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

나중에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내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사람들이 쳐다보면 손을 놓고 싶은 적도 있었고, 학교에 데려다준다고 하면 차마 거절하지 못해 억지로 엄마와 함께 갔었다는 말도 했다. 또 한 번은 어릴 때 뾰족한 코가 싫어서 납작하게 만들려고 방바닥에 코를 대고 잔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까지는 헤아리지 못했으니 난 꽤 무심한 엄마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요셉은 집에 오면 늘 명랑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였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요셉은 서울 외국인 학교에 다니길 원했다. 하지만 남편은 목사 자녀이기 때문에 교인들의 자녀가 다니는 공립학교에 함께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목회자 자녀가 비싼 돈을 들여 외국인 학교에 다니며 특권을 누린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루는 요셉이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한 뒤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남편에게 “학교에서 아이들 놀림이 심한가 봐요” 하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요셉은 엄연한 한국인이요. 그러니 공립학교에서 교육받는 게 당연해요. 처음엔 좀 힘들겠지만 나는 요셉이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의 확고한 뜻을 확인한 뒤 요셉에게 잘 알아듣도록 타일렀다. “너는 한국 사람이야. 그러니 한국 학교에 다녀야 해.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단다. 그리고 엄마도 한국에 와서 놀림당했어. 하지만 네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분명 친구들의 마음을 되돌려 주실 거야.”

며칠 뒤 요셉은 현관문을 발로 차고 들어왔다. 이유를 몰랐지만 아침에 챙겨둔 도시락이 그대로 남은 걸 보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요셉에게 도시락 메뉴로 샌드위치를 싸준 것이 발단이었다. 처음 보는 음식에 눈이 휘둥그레진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요셉은 혼혈아니까 그렇다’고 받아들이고는 점심까지 굶었다고 했다.

요셉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사는 게 참 힘들어요. 난 도대체 한국 사람이에요. 미국 사람이에요”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고작 열 살밖에 안 된 아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으니 내 가슴은 얼마나 아팠겠는가. 요셉은 다음 날부터 등교 전에 미리 도시락을 확인하고는 햄이 한쪽이라도 들어 있으면 들고 가지 않았다.

한국 반찬 만들기에 소질이 없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요리책을 보고 한국 음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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