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두상달 (24) 굶어 죽는 생명 살리려 구슬땀… 도덕·투명·정직 강조

두상달(왼쪽 다섯 번째)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이사장과 기아대책 관계자 및 후원자들이 2014년 서울 종로 서울극장에서 열린 창립 25주년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제인조찬기도회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경제계 어른들과 교제할 기회가 많아졌다. 한국유리 최태섭 회장님 소개로 1989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창립에 참여하게 됐다. 기아대책은 71년 미국에 설립된 국제 기독교 구호단체다.

최 회장님이 초대 이사장이었고 나는 창립 이사였다. 창립 때 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난관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이 원조를 받기만 했지 누굴 도와본 일이 없었다. 받는 규정은 있어도 해외를 돕는 규정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구에는 70억명이 먹을 식량이 충분하다. 하지만 지구촌 한 모퉁이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생명이 굶어 죽고 있다. 한 통계에는 1년에 전 세계에서 1000만명 가까운 사람이 아사한다고 한다. 그중 75%가 5세 미만의 어린이라는 사실이 늘 안타깝다.

기구를 창립한 후 10여년 동안 나는 홍보를 위해 전국을 다녔다. 교회마다 찾아다니면서 기아현장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며 구호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다녔다.

창립 초기 한 교회에서 설명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여성이 다가와 봉투를 건넸다. 안에는 낡은 5000원짜리 지폐가 들어있었다. 파출부로 일하며 지하 단칸방에 사는 집사님이라고 했다. 일당이 3만원도 되지 않는 분이었다. 봉투를 쥔 손이 떨렸다. 가슴이 찡하더니 이내 눈물이 흘렀다. 과부의 두 렙돈 보다 더 크고 귀한 돈이었다. 기증자들이 주시는 사랑을 천하보다 귀하게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날이었다. 구제는 돈이 많아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나는 창립자 윤남중 이사장의 뒤를 이어 이사장으로 6년 동안 봉사했다. 이사로 봉사했던 기간까지 합치면 25년 동안 섬겼다. 기아대책기구가 한 의료기관 인수에 관여하다 어려움을 겪으며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

이사회나 모임이 있을 때마다 기구의 정체성과 비전을 함께 읽고 정도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도덕성과 투명성, 정직성은 NGO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돈을 모으는 게 기술이라면 잘 쓰는 것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명품 NGO’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최빈국에 가보면 문명의 역사를 과거로 되돌린 것만 같다. 하나 같이 비기독교 문화권이었다. 먹을 게 없는 이들의 일상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다. 피골이 상접한 아이들은 울 힘조차 없어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다. 파리가 덕지덕지 붙어도 쫓지도 못한다.

기아대책은 떡과 복음을 전하는 단체다. 생선만 주는 게 아니라 생선 잡는 방법도 가르쳐준다. 지역사회 개발을 돕는 공동체 비전(VOC)을 각 나라에서 실현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창립 15년 만에 연 예산이 1000억원을 돌파했다. 수많은 어린이가 고사리손으로 동전을 모아 보내줬다. 교회들의 기여도 큰 몫을 차지했다. 국민일보의 도움도 컸다. 전국 이사님들과 초기 직원이었던 이성민 캄보디아 선교사의 공로도 크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구제는 잉여와 결핍이 만나는 공간에서 이뤄지는 사랑으로 가장 아름다운 공생 사역이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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