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7월 28일] 따라하기와 따라가기



찬송 : ‘예수 따라가며’ 449장(통 37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8장 18~27절

말씀 : 스마트폰이 출시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말하는 고양이 ‘토킹톰’ 애플리케이션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앱을 열면 톰이라는 귀여운 고양이가 한 마리 서 있는데 무슨 말을 하든 그대로 따라 했었죠. 지금이야 아예 사람과 대화를 하는 인공지능이 개발됐지만 10년 전만 해도 토킹톰은 획기적이었습니다.

토킹톰을 보며 제자도를 생각했었습니다. 제자란 모름지기 토킹톰처럼 스승을 고스란히 흉내 내는 존재입니다. 스승의 인격을 흠모하고 그의 생각과 행동에 집중합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그대로 실천합니다. 그러다 보니 스승의 말을 흉내 내기도 하고 행동도 흉내 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싶었던 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서기관이었습니다. 대단한 성경 지식이 있었죠. 그는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성경 말씀을 어떻게 저렇게 잘 해석할 수 있을까.” 놀라운 가르침에 서기관은 그만 마음을 빼앗겨버렸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 “당신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겠습니다”라고 고백했죠.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다 보금자리가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구나.”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여우도 새도, 하찮은 미물까지 다 따뜻한 집이 있는데 나는 마땅히 머물 곳이 없다”는 것이죠.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었습니다.

능력 있는 서기관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자청하고 있는데 얼마나 기쁘고 잘된 일일까요. 주님이 반기시기는커녕 자신의 외롭고 쓸쓸한 신세만 한탄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 불쌍한 사람만 사랑하셨던 건 아닙니다. ‘옥중서신’ ‘나를 따르라’ 등을 쓴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사인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 사람은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감격했을 뿐이다. 예수님은 지금 고난의 길,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는데 서기관이 이를 알 리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길, 희생의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그 길은 바로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걸었던 그 발자국 그대로 제자들이 뒤따라오기를 바라셨습니다. 서기관은 그저 겉모습만 봤던 것입니다. 뛰어난 지성과 여러 기적을 일으키며 인기와 명성을 얻은 예수님의 겉모습 말이지요. 그러니 정작 예수님의 십자가 비전은 품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길 따라 제대로 따르기로 작정하셨습니까. 서기관처럼 말만 하면 안 됩니다. 무게만 잡으면 안 됩니다. 주님과 같은 꿈을 품고 그 길을 따라 삽시다. 그 길 끝에서 우리 주님께서 두 팔 벌려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도 : 하늘에 계신 아버지. 성자 예수님의 길을 따라 살 힘을 주옵소서. 넉넉한 믿음과 용기와 소망을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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