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동부 (4) 내 인생 송두리째 바꾸게 될 제과·제빵과의 첫 만남

유동부 대표가 지난 6월 18일 강원도 춘천의 사업장에서 치아바타 빵에 들어가는 원재료를 설명하고 있다. 빵 제조 기술을 배우려 새벽같이 일어났던 그의 숱한 노력과 기도가 그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다. 춘천=신석현 인턴기자


공장에서 일한 지 1년쯤 지나고 2년제의 비인가 야간고등학교에도 진학했다. 하지만 그저 졸업장이라도 따는 것이 목표였을 뿐 공부엔 관심이 없었다. 출석 도장만 찍는 것에 의의를 두고 공부는 뒷전이었다.

1987년 열여덟 살이 된 난 이제 어느 정도 첫 직장에서의 일도 손에 익었겠다, 소자본으로라도 나만의 장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공업사를 차리기엔 창업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아 엄두가 안 났다. 당시 다니던 야간고등학교에서 알게 된 한 선배가 제과점은 어떠냐며 추천해줬다. 이때 처음 알게 된 제빵, 제과가 앞으로의 내 인생을 바꾸게 될 줄은 그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오가며 본 동네 제과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름때 묻혀가며 일해야 했던 공업사 환경에 비하면 너무나도 깨끗하고 좋아 보였다. 열심히 제빵 기술을 배우면 언젠간 내 가게를 차릴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 선배는 내게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 제과점을 소개해줬다. 서울에 정착한 지 3년여 만에 다시 또 낯선 땅 춘천으로 향했다. 첫 직장 공업사와 마찬가지로 먹여주고 재워주며 기술만 가르쳐준다면, 월급 같은 건 안 줘도 됐었다. 새벽 4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빵을 만들고, 배달하는 등 고된 육체노동의 삶이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빵 만드는 법을 바로 배울 수 있었던 건 아녔다. 말 그대로 처음 1년간은 주야장천 설거지만 했다. 요식업계가 그렇듯 제과점 업계도 지독한 계급사회였다. ‘시다’라 불리는 잡일을 하는 보조부터 오븐 등을 맡는 ‘가마돌이’ ‘가마장’, ‘주단파’라 불리는 반죽 담당을 거쳐, 케이크 등을 장식하고 성형하는 ‘주말이’, 매장관리 등 전체적인 총괄 ‘공장장’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계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단계마다 몇 년씩 걸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빵의 주재료인 밀가루 반죽조차 한 번 만져보려면 몇 년은 족히 걸렸다. 당시는 일할 사람도 넘쳐났던 터라 식사 때면 공장장에게 숟가락, 젓가락까지 갖다 바쳐서라도 기술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기술을 가르쳐 주면 금방 다른 데로 이직해버리고 할 때라 누구도 쉽게 기술을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

결국, 혼자서라도 터득하고 살아남아야겠단 생각에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1시간씩 일찍 일어나 몰래 반죽을 만지며 곁눈질로 본 기술을 연습 삼아 시도해보곤 했다. 몰래 반죽에 팥 앙금을 넣어봤다 상사에게 걸려서 혼나기도 일쑤였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성격도 급하고, 이론에도 빠삭하지 않았던 난 기술적으로도 특화된 제빵사는 아니었다. 나중에 서울에 다시 올라와서 몇몇 빵집에서 일도 했지만, 처음부터 인정받지는 못했다. 지금도 난 타고난 제빵 기술이나 재능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어머니께 물려받았던 성실함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빨리 기술을 배워 조금 더 많은 월급을 받고, 하루빨리 내 사업장을 갖고 싶었다.

정리=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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