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7월 20일] 선행의 세 종류



찬송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384장(통 43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6장 1~4절

말씀 :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격에 세 가지 영역이 있다고 했습니다. 본성의 명령을 따르는 ‘이드’와 현실 원칙을 중시하는 ‘에고’, 윤리적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슈퍼 에고’입니다. 이드는 하고 싶은 것을 그냥 하려 합니다. 하기 싫은 것은 무조건 피하려 하는 마음이지요. 반면 에고는 손익계산을 따집니다. 현실주의자니까요. 그래서 남는 장사라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기도 하고 하기 싫은 일도 꾹 참고 해내게 하는 마음입니다.

초자아라고 불리는 슈퍼 에고는 윤리적 판단을 주관합니다. 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 남는 장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땅히 사람이라면 해야 할 양심적 일을 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하는 선행은 어느 범주일까요. 슈퍼 에고의 관점으로 선행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착하게 살아야지요.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나눠야지요. 선행의 이유를 묻는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칭찬은 과분합니다. 저는 그저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아마 예수 믿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 말이지요.”

어떤 이는 에고의 관점에서 선을 행합니다. 이 선행을 통해 내가 손해 보는 것과 내가 얻게 될 유익을 저울에 달아봅니다. 선행에 필요한 돈과 시간, 에너지를 계산한 뒤 선행 뒤 얻게 될 칭찬과 박수와 명예를 비교합니다. 물론 손해 보는 것이 크면 절대로 하지 않으며 기대되는 유익이 크면 반드시 시행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드의 관점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그냥 좋은 부류지요.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주고 우는 친구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그냥 좋은 겁니다. 남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다른 이의 성공을 내 일처럼 기뻐해줍니다. 그가 양심에 걸려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런 선행으로 얻게 될 유익을 기대하며 이렇게 한 것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은혜가 넘치는 사람은 받은 은혜에 감격해 넘치는 은혜를 나눠주는 것이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받은 사랑이 너무 커 충만한 사랑을 나눠주고 싶은 것, 바로 그뿐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1, 3~4)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은혜를 베푸는 사람들이 됩시다. 천국의 축복 때문에 그 받을 축복이 너무 커 이 땅에서 먼저 나누며 사는 축복의 사람들이 됩시다.

기도 : 은혜의 하나님. 주님의 크신 은혜에 감격해 그저 사랑하는 사람, 그저 은혜를 노래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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