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위로를 만나면 달라지는 것들

픽사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부재로 여전히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 주위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상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요. 그동안 했던 위로의 말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혈병과 뇌종양으로 어린 두 자녀를 3개월 사이에 잃은 K집사님은 장례식장에 오신 목사님이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시련을 주신다”고 말했을 때 “목사님이 감당할 수 있으면 한번 감당해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투병하는 동안 주위에서 “집사님의 신앙생활을 더 잘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더 크게 쓰시기 위해” “혹시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나 돌아보세요.” “하나님이 더 크고 놀라운 것을 주실 거예요”라는 말을 들을 때 위로가 아닌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적합하지 않은 성경 구절을 전하는 예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나님은 견딜 만한 시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말씀 자체는 맞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에겐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재난당한 가정을 찾아가 고상한 기도를 하려고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들의 심정으로 기도하는 것이 위로일 것입니다. 함께 있어주며 “힘내세요. 기도하겠습니다.” “아무리 위로해 드릴 말을 찾아도 위로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슬픔이란 감정은 일반적으로 소중했던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감의 표현입니다. 돈을 잃어버리거나 실직을 당하거나 시험에서 실패했을 때도 슬프지만, 사별로 인한 슬픔은 말할 수 없이 깊고 큽니다. 사별 이후 겪는 슬픔은 단순히 ‘sad’(슬픔)가 아닌 ‘grief’(비탄)이며 죄책감, 후회, 수치심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감정입니다.

슬픔 치유를 위해 ‘감정적 재배치’와 ‘공간적 재배치’가 필요합니다. 감정적 재배치란 슬픔이 삶을 압도하지 않도록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감정적 ‘공간’을 두는 것입니다. 생각을 금하거나 심리적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아니라 느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공간적 재배치가 필요합니다.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장소, 또는 가까운 박물관, 카페 등에 고인을 추모할 만한 장소를 두는 것입니다. 이 장소에서 슬픔과 기쁨, 눈물과 웃음, 감사와 후회를 경험하면서 슬픔은 서서히 치유될 것입니다.

신비롭게도 슬픔이 위로를 만난 순간 다른 감정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2015년 개봉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슬픔이 위로를 만날 때 행복으로 전환되는 ‘공감의 원리’를 잘 담아낸 사례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11살 소녀 라일리의 머릿속 감정 제어 본부에서 일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란 5가지 감정이 낯선 환경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라일리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애니메이션입니다. 극 중에서 가출한 라일리를 돌아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슬픔에서 비롯된 추억이었습니다. 하키 경기에서 진 라일리가 슬퍼하고 있을 때 가족들이 감싸주고 위로해주자 슬픈 감정이 행복한 감정으로 전환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슬펐던 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견딜 수 없이 힘든 감정에 빠졌을 때 과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해 보십시오. 물론 훈련이 필요합니다. 먼저 ‘긍정적인 정서의 기억’(마음 글쓰기 참조)을 기록해 보십시오. 그 기록을 읽어보시고 잠시 묵상하십시오.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호흡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기억의 저장고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건져 올리는 것입니다. 마치 암실에서 사진을 인화하듯 선명했던 기억이 떠오르듯 말입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긍정적인 정서의 기억’을 세밀하게 기록해 보십시오. 어린 시절의 기억도 좋고 며칠 전 일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상 받을 때 느꼈던 흥분된 감정보다는 공원 벤치에서 햇살을 맞으며 쉴 때 느꼈던 평범한 감정이 더 효과적입니다.

기억의 세부사항을 기록하는 것은 그 기억으로 가는 ‘심리적 지름길’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잠시 견딜 수 없이 힘들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다음, 긍정적인 정서의 기록을 읽어보세요. 이를 몇 번씩 반복해 보십시오.

다시 불안한 감정이 들 때 ‘긍정적인 정서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문장을 떠올리십시오. 그러면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감정 사이에 다리가 연결됩니다. 부정적 감정은 긍정적 기억으로, 긍정의 감정으로 바뀔 것입니다. 아래 예시와 같이 긍정적인 정서의 순간을 포착해 세밀하게 기록해 보십시오.

*긍정적인 정서의 기억 기록하기

-나는 ○○한 좋은 감정을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에 있었고 ○○을 봤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내 인생에서 ○○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절대로 그때 당시의 ○○를 잊지 못할 것이다.
(예)
-나는 겨울 수목원에서 좋은 감정을 느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폭설이 내리는 수목원 한가운데 있었고 사방이 설원으로 뒤덮인 산하를 바라봤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내 인생에 쉼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때 당시의 수목원 풍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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