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보건의료·인도적 지원… “교류하며 지낼 날 꿈꿔요”

문용자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명예이사장(가운데)이 30일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제공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에서 최룡호 평양과학기술대학 부총장(왼쪽)에게 감사패를 받는 모습.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제공


“이번 상은 더욱 열심히 북한 사역을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작은 희생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기쁨을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주님 앞에 가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문용자(83·서울 소망교회 권사)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 명예 이사장이 최근 국민일보 ‘올해의 크리스천 의료인상’을 받은 직후 밝힌 소감이다. 그는 개인 재산을 털어 2015년 6월 ㈔남북보건의료교육재단을 설립하고 ‘통일의 나눔’ 공동대표로 활동해왔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을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 ‘북아해사랑단’을 조직해 북한의 굶주리는 어린이를 돕고 개성공단 남북협력병원에서의 무료 진료 활동, 탈북 보건의료인 교육사업 등에 헌신해왔다.

그는 북한통이다. 2007년부터 3년여 (재)그린닥터스 상임 공동대표와 개성공단 개성 남북협력 병원장을 맡아 개성을 드나들었다. 의료장비와 구충제, 독감 주사 등 다양한 의약품을 전달했다. 북한 보건의료 및 인도적 지원에 대한 세미나를 여러 차례 열기도 했다.

“개성협력병원은 남북의 의사들이 함께 진료하는 병원이었어요. 모두 396㎡(120평)였는데 남쪽 40평, 북쪽 40평, 나머지 40평은 공동공간으로 활용했습니다. 각종 검사 시설과 수술실이 있었는데, 북한 의사들은 남한 의사들과 상담하고 치료가 어려운 경우는 의뢰도 하고 그랬어요.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지요. 당시 종합병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철수하는 바람에 무산됐죠. 개성공단 노동자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최근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고 남북 교류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무척 안타깝습니다. 남북한이 서로 교류하고 평화롭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30일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만난 그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출석했다고 말했다. 8살 때 어머니를 따라 부흥회에 갔는데 예배당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당시 아이들은 예배당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호기심 많던 그는 몰래 숨어 들어가 부흥사 목사님이 서는 강단 뒤에서 부흥회를 지켜봤다.

말씀을 듣다가 기도하게 됐는데 갑자기 울음보가 터졌다. 그 소리에 그만 목사님의 눈에 띄고 말았다. 잔뜩 겁을 먹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근엄한 얼굴 대신 자상한 모습으로 다가와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한다. 그는 그때 감격과 감동을 고이 간직했다. 십자가의 사랑을 널리 전하게 해달라 기도했다.

의사 직업을 갖게 된 사연도 들려줬다. 그는 걸핏하면 병원 신세를 졌다. 14살 때 수영을 하다 귀에 물이 들어가 염증이 생겼다. 병원에서 치료받았는데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를 진료하는 여의사를 봤다. 순간 청아한 그의 모습에 매료됐다.

‘아! 커서 저 직업을 가져야겠다. 어른이 되면 나처럼 몸이 아픈 사람을 돌봐 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기독 의료인의 꿈을 품게 된 것이다. 주위에선 여성의 몸으로 의사가 되는 것은 무리라며 만류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단호했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목사님 말씀을 들으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을 마음 판에 새겼다.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했고 의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한미장학재단 장학금으로 공부해 의대 6년을 마쳤다.

이후 그는 의료사각지대를 찾아다녔다. 동남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180여개 국가를 돌며 의료선교·봉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다. 그의 선교 활동에는 2016년 별세한 남편이자 외과 전문의 신요철 장로가 함께했다.

북한 사역은 교인들과 함께 진행했다. 북한의 보육원과 탁아소 어린이에게 감자와 옥수수, 밀가루 등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전달했다. 탈북 의료인을 재교육해 한국 사회에서 소통 반경을 넓혀주는 일도 그의 사역이다.

그는 늘 가정예배를 드렸다. 4남매를 건강한 신앙인으로 키워냈다. 모두 세례를 받고 의료계 음악계 법조계 기독교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문 명예 이사장은 이화여대 의대와 서울대 의대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공학 과정, 영국 옥스퍼드대 켈로그 칼리지 리더십 과정 등을 수학했다.

지성종합병원 진료부장 겸 종합검진센터장, 대한의사협회 의정회 홍보이사, 서울시의사회 섭외이사와 감사, 서울시 강남구의사회장, 그린닥터스 상임공동대표(개성공단 개성남북협력병원장), 서울시 의원 등을 지냈다.

현재 (재)통일과나눔 공동대표, 대한의사협회 고문, 서울시의회 여성의원발전연구회 회장, 세계결핵ZERO본부 대외협력위원장, 북아해사랑단 대표회장 등을 맡고 있다. 2016년 ‘자랑스런 이화 의인(醫人) 박에스더상’을 수상했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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