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이석준] “루이스와 프로이트의 만남 ‘말로 하는 펜싱’ 기대됩니다”

오는 10일 초연되는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CS 루이스 역을 맡은 배우 이석준이 무대 위에서 연기 연습을 하고 있다. 파크컴퍼니 제공
 
이석준이 지난 1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삶과 신앙을 소개하는 모습. 신석현 인턴기자


“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 내적 심리상태, ‘신이 존재하는구나.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구나’를 확증하는 순간이 소름 끼칠 만큼 닮았더군요. 싱크로율을 더 높이려고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25년 차 배우 이석준(48)에게선 오로지 한곳에 몰두한 투우사의 표정과 눈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정신과 시선이 집중된 곳엔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학자 CS 루이스가 있었다. 오는 10일 국내 초연되는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루이스 역을 맡은 이석준을 지난 1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라스트 세션’은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2010년 뉴욕에서 초연한 2인극이다. 작품은 오늘날 정신분석학의 기틀을 마련한 대표적 무신론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순전한 기독교’ ‘헤아려 본 슬픔’ 등의 저서를 남기며 기독교 변증을 펼친 유신론자 CS 루이스의 상상 속 만남을 무대에 펼쳐 놓는다.

이석준과 ‘라스트 세션’의 인연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왔다. 지난 3월 성경공부를 같이하던 배우들과 대학로에서 모임을 마치고 나서던 길에 우연히 제작사 파크컴퍼니의 박정미 대표를 만났다. 이석준의 손엔 루이스의 저서 ‘예기치 못한 기쁨’이, 박 대표의 손엔 ‘라스트 세션’ 대본이 들린 채였다.

“운명 같은 일이었죠. 최근 몇 달 동안 성경모임에서 루이스와 유진 피터슨의 책들을 읽고 있었거든요. 루이스를 동경하던 제게 ‘역사 속 루이스’가 불쑥 찾아온 겁니다.”

배역과 작품 속 상황을 깊이 파고들며 분석하는 배우로 정평이 난 이석준에게 루이스 역은 입기 쉬운 옷이 아니었다. 중세기사의 철갑옷처럼 옷을 만들 땐 제 몸에 맞춰 한 부분씩 재단하고 붙이길 반복해야 했고 착용 후엔 그 육중한 무게를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따랐다.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나누는 다섯 줄의 대화가 책 한 권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장면이 숱하게 등장합니다. 그 뜻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 바지런히 책 읽기와의 전쟁을 벌였어요. 보통 첫 공연 1~2주 전쯤엔 대본 맞추는 작업을 줄이고 캐릭터를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하루 네 번씩 대본을 맞춥니다. 대사 속 단어와 어미, 호흡 하나에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될지가 결정되는 작품이기에 중압감도, 기대감도 크죠.”

연습 과정을 소개하는 그의 모습에 책 ‘고통의 문제’에서 “고통은 정신을 자극하는 촉매제이며 생각이 게으름은 큰 범죄”라고 말했던 루이스가 그대로 투영된 듯했다. 프로이트 역엔 베테랑 연기자 신구(84) 남명렬(61)이 나서고 연극 무대에 공식 데뷔하는 배우 이상윤(39)이 루이스 역을 함께 맡는다. 신앙생활을 해본 적 없는 신구와 모태신앙이었으나 현재는 신앙이 없는 남명렬, 독실한 크리스천인 이석준 이상윤이 각자의 배역에 녹여낼 세계관도 관람 포인트다.

10년 넘도록 매주 월요일 밤 대학로에서 배우들과 성경모임을 가져온 이석준에게 ‘라스트 세션’이 주는 의미는 작품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예술적 무대를 즐기던 세대와 상업적 무대를 소비하는 세대 가운데 낀 세대’라고 지칭한다. 배우로서 그의 사명은 자극적인 것을 좇아 건강함을 잃어가는 대학로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무신론에 수렴해가던 자신을 회심하게 해 준 아내 추상미와 대본을 놓고 얘기할 땐 “세상에 이런 공연이 있어. 내가 이런 대사를 하네”라며 서로 웃음을 짓는다.

“성극이 아닌 대학로의 대중성 그득한 무대 위에서 ‘하나님은 살아있다’고 외치는 공연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꿈에서나 그리던 모습이었죠. 그동안 누군가 하나님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무대에선 항상 그 언저리를 돌지 중심으로 들어간 적이 없었어요. 그 중심에서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펼칠 ‘말로 하는 펜싱 경기’가 저도 기대됩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무대에 오르기 전 주기도문을 되뇌며 공연을 준비한다. 성경구절을 암송하면서 연기에 대한 바람을 수식처럼 붙이다 하나님께 생떼를 부리는 것 같아 변화를 준 자기만의 루틴이다. 루이스는 천국에 도착한 우리가 할 첫 번째 말은 “아, 이랬었군요. 주님”이라고 했다. 이석준에게도 그런 확신이 느껴졌다.

“천국에서 ‘주님. 2020년에 이래서 ‘라스트 세션’과 함께하게 하셨군요’라고 말할 것 같아요. 신앙이 있든 없든, 모든 관객에게 파장을 던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놓치지 마세요.”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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