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묻는 ‘선거 역사 73년’… 새 일꾼 제대로 뽑고 있나

디자이너 그룹 ‘일상의 실천’이 대선 구호를 활용해 만든 관객참여형 작품 ‘이상국가’. 일민미술관 제공
 
5·10 총선거 포스터. 일민미술관 제공
 
60∼80년대 총선거 포스터. 일민미술관 제공
 
87년 대선 포스터. 일민미술관 제공
 
최하늘 작가의 작품 ‘한국몽’. 일민미술관 제공


‘투표하는 날 여러분의 투표소로 가십시오→각 선거인 명부에 도장이나 지장을 찍으십시오.’

1948년 5·10 총선거 때 발행된 ‘조선화보’. 난생처음 투표하는 유권자를 위해 투표 방법이 사진과 함께 친절하게 적혀 있다. 5·10 총선거는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의 첫 선거였다. 선거가 시민들이 피 흘려 쟁취한 전리품이었던 서구와 달리 한국의 첫 선거는 유엔 결정에 따라 그저 주어진 것이었다.

오는 4·15 총선을 앞두고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새 일꾼 1948-2020’전은 여러모로 뜻깊다. 5·10 총선거부터 시작되는 우리나라 선거사 73년을 톺아보는 전시인데, 전시장을 둘러보노라면 선거가 선물처럼 주어진 탓에 우리는 지금도 일꾼을 제대로 뽑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특히 이번 총선은 여야 모두 꼼수 위성정당을 내세우는 등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한국의 정치 문화가 과연 진화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이번 전시는 일민미술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기록보존와 공동 주최했다. 풍부한 사진과 포스터 등 각종 기록 자료와 함께 설치, 퍼포먼스, 게임, 음악 등 다양한 형식을 빌려 선거 문화를 비판하고 재해석한 현대미술 작품이 어우러져 입체적인 전시 문맥을 만들어낸다. 김대환 김을지로 박혜수 안규철 천경우 등 총 21명(팀)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옛날 선거 포스터 등이 ‘레트로 감성’을 자극한다. 포스터에 나온 구호의 변천사를 살펴보는 것도 전시를 보는 좋은 방법이다. 5·10 총선거 때는 해방 이후 첫 선거라 거의 모든 후보가 ‘애국자’를 자처했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선 민주당의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에 자유당이 ‘갈아봤자 더 못산다’고 받아쳤다. 1960년∼80년대에는 ‘경제개발’과 ‘민주화’의 양대 대립 구도로 선거가 진행됐다.

안규철 작가의 작품 ‘69개의 약속’은 역대 대통령 선거 벽보에서 후보들의 표정을 지우고 구호만을 남겨 모노크롬 회화처럼 제시한 것이다. 벽보 속 다양한 색을 하나의 평균값으로 도출해 만들어진 단색은 “정당들이 각기 다른 구호를 외쳐 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1960년의 3·15부정 선거, 1960년대의 막걸리 고무신 선거 등 후진적 선거 문화 자료도 빠지지 않고 나왔다.

직선제 개헌으로 국민은 1987년 12월 16일 16년 만에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보통사람’과 ‘안정’을 내세운 노태우 후보, 군정 종식을 부각한 김영삼 후보, ‘평민’과 ‘대중’을 앞세운 김대중 후보, 집권 경험을 강조한 김종필 후보가 각축을 벌인 선거도 당시 포스터를 통해 생생하게 소환된다.

현대미술 작가들은 현행 선거 문화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최하늘 작가는 ‘한국몽’이라는 설치작품을 통해 선거 문화가 남성 위주로 진행됐음을 고발한다. 그는 이 작품에서 우리 사회 비주류인 미혼모, 난민, 외국인 노동자 등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상상을 조각 형식으로 담았다.

전시는 애초 입법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주제별 상황극과 모의 투표를 병행하는 사회극 형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상황극은 무산됐다. 매주 다양한 주제로 모의투표는 시행하고 있으며 일요일엔 개표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K-팝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군면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공중파보다 유튜브를 신뢰한다, 정시는 공정한가, 지구와의 협상은 늦었다 등 흥미롭고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는 모의투표가 젊은 관객들을 손짓한다. 전시는 6월 21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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