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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 뉴욕타임스가 샌더스에 날린 핵펀치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시작되기 전이었던 지난달 19일 사설을 통해 경선 지지 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NYT의 선택은 엘리자베스 워런·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이었다. NYT가 2명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은 처음이었고, 둘 다 여성인 점도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경선 뚜껑이 열리자 워런은 4위, 클로버샤는 5위로 처졌다. 이들의 승리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 민주당 경선 1위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NYT는 샌더스를 지지 후보에서 제외한 이유를 설명하며 ‘팩트 폭력’을 가했다. NYT는 “샌더스는 타협을 가장 싫어하는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가 내놓은 해법이 맞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매우 경직됐고, 검증되지 않았으며 분열적인 것들이다”라고 지적했다. NYT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NYT는 “우리는 워싱턴에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분열적인 인물을, 똑같이 그런 인물로 대체하는 것에 대한 이익은 거의 없다고 본다”며 핵펀치를 날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샌더스를 동급으로 치부한 것이다. NYT가 ‘진보의 영웅’ 샌더스를 이렇게까지 깎아내린 것은 의외였다.

미국 언론들이 전하는 샌더스의 개인적 성향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그는 어디에서건 거의 행복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샌더스는 상원 회기 중에 동료 의원들과 거의 접촉을 하지 않는 유명한 외톨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기자로부터는 이런 얘기도 들었다. 그는 민주당 지지자지만 샌더스를 지독히도 싫어한다. 그는 몇 해 전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샌더스와 같은 비행기를 탔다고 한다. 유명 인사를 모른 체하기도 그래서 가볍게 인사를 건넸는데, 샌더스가 극히 짧은 응대만 하고 고개를 홱 돌렸다는 것이다. 불쾌한 기억이 사감으로 번졌는지 모를 일이다.

이달 초 민주당 첫 경선이었던 ‘아이오와 코커스’ 현장을 취재했을 때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야외 유세였는데, 샌더스는 버스에서 내린 뒤 지지자들을 뚫고 단상에 올라갔고, 연설을 마친 뒤 곧장 버스에 탔다. 그럼에도 샌더스 돌풍은 매섭다. 워싱턴 정치에 대한 혐오가 기폭제다. 샌더스는 ‘외톨이’지만, 지지자들에겐 워싱턴 조폭들과 싸우는 외로운 검객이다. ‘메디케어 포 올(정부가 운영하는 전 국민 의료보험)’, 대학생 학자금 대출 탕감, 영유아 보편적 보육 프로그램 등 샌더스가 내건 공약에 대한 지지도 뜨겁다.

하지만 샌더스 바람은 어딘가 공허하다. 그는 화려한 정치경력을 자랑한다. 벌링턴 시장(4선), 연방 하원의원(8선), 연방 상원의원(3선)을 지냈다. 그러나 이 모든 경력을 버몬트주에서만 쌓았다. 버몬트주는 민주당 상징색이 푸른색이라 민주당 텃밭을 의미하는 ‘블루 스테이트’ 18개주의 하나다. 민주당 강세지역에서만 승리를 이어간 셈이다.

샌더스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강남 좌파’다. 그의 재산은 250만 달러(약 30억원). 샌더스는 “나는 베스트셀러를 썼다. 누군가 베스트셀러를 쓴다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얼마 전 민주당 대선 후보 TV토론에선 샌더스가 별장 한 채를 포함해 집이 세 채라는 점이 논란이 됐다. 샌더스 돌풍을 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버랩된다. 노 전 대통령이 2000년 4월 부산 총선에서 패배한 이후 “농부가 어찌 밭을 탓하겠습니까”라고 말한 것 같은 뜨거운 감성이 샌더스에겐 없다. 오로지 차가운 이성으로 승부를 거는 샌더스다. 그나저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온 나라가 패닉에 빠졌는데 뜨거운 감성도, 차가운 이성도 없이 권력욕만 가득한 이들이 대거 총선 출사표를 던진 것 같아 걱정이 크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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