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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쫌… 사투리도 매력적” 베트남에 부는 한국어 열풍

지난 7일 베트남 호찌민시 호찌민기술대에서 열린 ‘제2회 베트남대학생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황티한(가운데)씨가 상장을 받고 있다. 황티한씨는 구수한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호찌민=이도경 기자




“여러분 혹시 ‘가가 가가’란 말 들어보셨나요?”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베트남 대학생 황티한씨의 너스레에 한국인들이 폭소를 터뜨린다. 이어 “한국 경상도 사투리인데요. 그 아이가 그 아이인가란 뜻이래요”라고 설명하자 베트남 학생들이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인다. 황티한씨는 반응이 좋자 그동안 갈고 닦은 한국 사투리들을 늘어놓는다.

“전라도는 ‘거시기’, 경상도에선 ‘쫌’, 충청도는 ‘뭐여’란 말은 모든 상황을 대신할 수 있어요. 경상도의 쫌을 보면 기쁠 때도 쫌, 슬플 때도 쫌, 무서울 때도 쫌이라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억양에 변화를 주며 ‘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솜씨가 영락없는 경상도 아가씨다. 그는 “사투리도 한국의 매력적인 문화입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 볼 때 알아듣기 힘든 대사로 당황한 적 있나요. 그랬다면 그 대사는 사투리일 수 있습니다”라고 발표를 마치자 박수가 터졌다.

나무도시락 종족과 자린고비

지난 7일 베트남 호찌민시 호찌민기술대(HUTECH)에서 열린 ‘제2회 베트남 대학생 한국어 말하기 대회’ 본선의 한 장면이다. 이번 대회는 한국학과가 있는 호찌민시와 인근 대학의 학생들이 참가했다. 치열한 예선을 거쳐 11명이 본선에 올라왔다. 본선에서 발표하는 주제는 ‘나에게 의미있는 한국 문화’ ‘소개하고 싶은 베트남 문화’였다. 대회는 강당 450석을 꽉 채워 성황을 이뤘다. 한국 어학연수 기회가 달려 있어 참가를 원하는 학생이 많았다고 호찌민시 한국교육원 관계자가 전했다.

구수한 사투리로 좌중을 휘어잡은 황티한씨는 호찌민시 사범대 한국학부에 다니고 있다. 베트남 사투리도 말해 달라는 심사위원의 돌발 요구에 잠시 당황했으나 베트남도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다고 소개해 박수를 받았다. 황티한씨는 최우수상을 받아 부산대 어학연수 기회를 받았다.

다른 참가자 발표도 깊이가 있었다. 한국의 추운 겨울에 스며있는 정(情)에 주목한 람티쭙다오씨의 발표도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한국 이름을 남가은이라며 발표를 시작했다.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을 얘기하다 정작 자신이 보고 싶은 한국의 계절은 겨울이라고 했다. 그리고 온돌방으로 이어갔다. 그는 “온돌이 단순히 집을 따뜻하게 하는 기능적 장점뿐 아니라 온돌 덕분에 가족들이 모여 오순도순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제 마음도 아주 따뜻해졌습니다”며 “한국 드라마 대사 중에 ‘밖이 너무 추워 그러니 조심하고 옷 따뜻하게 입어라’라는 말을 할 때가 있는데 사랑을 나누는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고 했다. 남가은씨도 최우수상을 받아 부산대 어학연수를 하게 됐다.

1등인 대상(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은 베트남의 지리적 위치에 따른 문화 차이를 소개하며, 끊임없는 외세 침략을 모두 이겨낸 베트남인의 자부심과 끈기 등을 설명한 호찌민국립대 인문사회과학대 한국학부 레티김프엉씨가 받았다. 그는 생활력이 강한 베트남 중부지방 사람들을 소개하며 “중부의 대표 지역인 응에안성의 사람들을 ‘나무도시락 종족’이라고 부릅니다. 먹을 것이 부족해 나무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두고 밥을 먹을 때 쳐다보는 종족이란 뜻으로 한국의 자린고비 이야기와 비슷합니다”고 소개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레티김프엉씨는 충남대에서 어학연수를 받는다.

한국어 배우려고 줄 선 아이들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경제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베트남에서 한국어 학습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 중심지인 호찌민시가 한국어 열풍의 중심지다. 먼저 케이팝과 영화, 드라마 같은 문화 콘텐츠가 마중물이 된다. 학창 시절에는 한류문화 때문에 한국어에 관심을 갖는 게 일반적인 듯하다. 베트남 학생들은 한국 드라마나 아이돌 가수 이름을 줄줄 댔다. 이후 점점 성장하면서 베트남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나 이들과 거래하는 베트남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운다. 베트남 호찌민시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자는 2014년 3134명에서 2019년에는 1만5753명으로 5배가량 증가했다.

호찌민국립대 소속 호찌민시 인문사회과학대 한국학과의 응우옌 티푸옹 마이 학과장은 “한국어를 전공하고 한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온 학생은 취업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3학년 때 취직돼 일하느라 졸업을 미룬 학생도 많다”고 말했다. 명문대로 꼽히는 인문사회과학대는 단순히 2015년부터 한국학부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학부에 들어가려면 30점 만점인 입학시험에서 영어 수학 문학 모두 A등급(8점)을 받아야 하며, 이는 다른 과보다 5점가량 높은 점수다. 이 학교는 베트남 최초로 한국학 석사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중·고교에서도 한국어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호찌민시 투득고의 한국어교실에서는 30여명의 학생들이 한국말을 익히고 있었다. 한국어 교사가 단어를 읽고 학생이 따라 읽는다. “날씨가 추운가요?”라고 교사가 묻자 학생이 “네”라고 답했다. 교사가 다시 “진짜요? 에이 아닌데”라며 손부채를 부치자 아이들이 웃었다. 이날 베트남 날씨는 30도에 육박할 정도로 더웠다.

한국어반 1학년 응옥양은 “아이돌 노래 가사의 뜻이 궁금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말은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케이팝 가수들이 무대에서 자주 쓰기 때문으로 보였다. 유튜브도 베트남 청소년 사이 한국어 확산에 기여하고 있었다. 마이쩜양은 유튜버 ‘체리혜리’를 한국어 과외선생님으로 꼽았다. 체리혜리는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사용하며 양국 문화를 비교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투득고는 한국어 채택 시범학교 12곳 중 하나다.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이 415명으로 전교생의 19%다. 이 학교 한국어 수업 수강생은 2017년 220명, 2018년 285명 등으로 매년 늘고 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서 학생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교실 밖 복도에는 학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한국어 교실에서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이었다.

호찌민=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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