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현장과 소통하면서 ‘선수’ 아닌 ‘세대’를 육성하고 싶다”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가 6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 집무실에서 부임 2주년의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진출을 달성한 대표팀의 주장이었고,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이끈 감독을 지낸 홍 전무는 2017년 11월 8일 임명돼 2년간 행정가로 활동해왔다. 최종학 선임기자
 
집무실의 공을 들고 밝게 웃는 홍명보 전무. 최종학 선임기자


홍명보(50). 그 이름에 한국 축구사의 여러 장면들이 지나간다. 1994 미국월드컵에서 독일에 0-3 완패로 끝날 줄 알았던 경기를 기어이 2대 3으로 좁힌 30m짜리 중거리 포를 때린 스위퍼, 2002 한일월드컵 4강 진출을 확정한 스페인전 승부차기의 마지막 주자.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사상 첫 동메달을 거머쥔 감독이 됐지만 2014 브라질월드컵 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질타도 받아봤다. 이제 홍명보는 공과 작전판이 아닌 펜을 들고 있다. 8일은 홍명보가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임명된 지 꼭 2년째 되는 날이다. 선수에서 지도자로, 지도자에서 행정가로. 그라운드에서 포지션을 가리지 않았던 현역 시절의 별명처럼 ‘영원한 리베로’가 돼 한국 축구를 지탱하고 있다.

행정가 홍 전무와 6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 집무실에서 만나 그의 축구인생과 한국축구에 대해 물었다. 홍 전무는 “브라질월드컵에서의 실패를 통해 더 많이 배웠다”며 “현장과 소통을 꾸준히 하면서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닌 ‘세대’를 육성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행정가 홍명보’로 2주년을 맞았다.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부임하고 며칠 지나니 축구회관 주변에서 학원축구 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가 벌어졌다. 시작부터 고민이 많았다. 초·중·고교에 대학까지 가리지 않고 현장을 다녔다. 주변 이야기도 들었다. 그랬더니 3가지로 방향이 모아지더라. 결국 공감하고 소통하며 현장을 우선하면 될 문제였다. 3가지 방향을 세우고 행정 업무를 시작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유소년의 ‘꿈나무 8대 8 대회’,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합한 K리그의 ‘피라미드 승강제’, 연령별(17·20·23세 이하) 대표팀 사이의 골짜기 세대를 연결하는 퓨처팀 제도는 2년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2017년 5월 중국 항저우 그린타운 감독을 마지막으로 지도자에서 물러날 때가 40대 후반이었다. 조금 이르지 않나. 그라운드가 그립지 않은가.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의 문제일 것이다. 그라운드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축구를 위해 일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맡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도자 복귀를 생각할 틈도 없다. 지금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그 뒤에 생각할 일이다.”

-선수 시절 개인적으로 어느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국가대표로 136경기를 뛰어 일일이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월드컵 스페인전에서 프리킥 골을 넣고 5분 뒤 서정원 감독의 동점골 어시스트한 순간과 독일전에서 득점한 순간이 기억난다.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은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한국은 그 전까지 월드컵에서 1승도 없었다. 첫 승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미국월드컵을 끝내고 유럽 진출을 타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적이 추진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폴리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미국월드컵을 끝내고 독일, 스페인 등 유럽 3개 팀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다. 그 시절 한국에 에이전트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소속팀(포항 스틸러스의 전신인 포항제철 아톰즈)에 맡겼는데, 조금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적료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유럽으로 진출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당시 한국 축구의 환경을 감안하면 미국·일본 정도의 해외 리그에서 활약하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한국의 동메달을 일궜지만 2년 뒤 월드컵에선 여론의 질타도 받았다. 지도자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선수 시절에 알지 못한 것들을 배운 시간들이었다. 영광의 순간도 있었고 비판받을 때도 있었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지만, 실패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하다. 브라질월드컵을 끝내고 받은 비판들을 새겨들었다. 그때의 실패를 통해 더 많이 배웠다. 행정 업무에서 적용할 때도 있다.”

-한국 축구는 이제 수많은 해외파 스타들을 배출하고 있다. 이 후배들의 활약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요즘 후배 선수들을 보면 기분이 좋고 자랑스럽다. 손흥민, 이강인, 이승우 등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다.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 고민할 때도 있겠지만 그곳에 갈 때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겠는가. 시련이 있어도 충분히 이겨낼 것이라고 본다. 이들보다 더 좋은 선수들도 나올 것이다. 그러면 한국 축구가 더 강해지지 않겠는가.”

-선수·지도자·행정가의 3가지 축구인생을 모두 살고 있다. 무엇이 다른가.

“다르다. 그중 ‘꽃’은 단연 선수다. 하지만 선수 시절에는 지도자의 노력을 몰랐고, 한 경기가 이뤄질 때까지의 과정은 행정가가 돼서야 알았다. 지도자는 선수를 육성하고, 행정가는 그 선수와 지도자에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 축구를 잘하겠다는 하나의 목적을 갖고 하는 일이다. 공통된 가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행정가’로서의 3번째 시즌이 시작된다. 어떤 각오로 임하겠는가.

“단순히 한 명의 선수를 발굴하는 것보다 좋은 ‘세대’를 만들고 싶다. 축구는 계속돼야 한다. 새롭게 진행하고 있는 제도들이 현장에서 뿌리를 내리고, 개선되고, 발전하는 것이 한국 축구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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