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인 열풍’에 다시 주목받는 트로트, 옛 명성 되찾을까

상반기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TV조선)이 불을 지핀 트로트 열풍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사진은 이 프로그램에서 ‘톱 5’에 진출하며 관심을 모은 출연자들. 왼쪽부터 김나희 홍자 정미애 정다경 송가인. 뉴시스




1993년 김수희의 ‘애모’는 ‘가요톱텐’(KBS2)에서 5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경합을 벌인 노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세련된 음악, 날렵하고 역동적인 춤, 멋진 패션으로 92년 데뷔하자마자 대중음악계를 발칵 뒤집었다. 이들의 모든 것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하여가’도 힙합과 국악의 접목, 레게 헤어스타일로 큰 관심을 받았다. 애모는 이런 폭주 기관차를 5주 동안 저지하고 ‘골든컵’을 가져갔다.

하지만 ‘애모’는 트로트 활황의 끄트머리를 장식한 노래가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성공 이후 댄스음악이나 힙합을 주메뉴로 내세운 그룹들이 가요계를 빠르게 장악하기 시작했다. 감각적인 것을 선호하는 10대, 20대가 대중음악의 핵심 소비 계층으로 자리 잡았다. 음악 프로그램들은 젊은 세대가 좋아할 만한 댄스 가수들 위주로 방송을 꾸렸다. 그렇게 트로트는 무력하게 주류에서 물러났다.

수십 년 동안 움츠려 지냈던 트로트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현상의 중심에 송가인이 위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올해 방송된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에서 우승해 일약 톱스타가 됐다. 빼어난 가창력과 섬세한 표현력을 갖춘 데다가 말투도 정겨워 호감을 샀다. 행사 출연 요청이 쇄도하는 것은 기본이다. 3일 열린 단독 콘서트가 예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매진됐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재 송가인은 트로트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다.

방송국들도 트로트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속속 선보이는 중이다. ‘놀면 뭐하니?’(MBC)는 ‘뽕포유’라는 에피소드로 유재석의 트로트 가수 데뷔를 담았다. ‘노래가 좋아’(KBS1)는 지난달부터 6주 일정으로 트로트 실력자를 발굴하는 프로젝트 ‘트로트가 좋아’를 내보내고 있다.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트로트 오디션 ‘보이스퀸’(MBN)도 방송을 앞두고 있다.

트로트가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갈 국면은 열렸으나 부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트로트가 주류 시장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창작 히트곡이 잇따라 나와야 한다. 그래야 트로트 시장이 활력을 띠면서 영역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출연자만 돋보이게 하는 데 그치곤 한다. 최고 시청률 10%를 훌쩍 넘기며 많은 이를 브라운관으로 이끈 내일은 미스트롯도 대다수가 인정할 만한 히트곡은 배출하지 못했다. 대중의 관심은 사실상 트로트가 아닌 ‘노래 잘 부르고 매력적인’ 송가인에 집중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런 기회가 마련됐다는 사실은 분명 낙관적으로 바라볼 만하다. 대중에게 트로트 음악과 가수를 소개할 창구가 희소했던 예전에 비하면 더없이 좋은 환경을 맞은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지닌 편안함과 오락적인 요소는 시청자가 트로트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이 과정이 쌓일 때 트로트는 익숙해지고, 나아가 새롭게 힘을 낼 수 있다. 작금의 흐름이 여러 장르의 고른 공생에 단초가 된다면 정말 기쁜 일이다.

<한동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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