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글로벌 외교의 ‘마중물’ 역할을 하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지난 4~8일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예카테린부르크, 모스크바 3개 도시 순회공연을 마쳤다. 사진은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로 자라지예 콘서트홀에서 열린 8일 모스크바 공연. ⓒ서울시향/KIMWOLF




‘조국 사태’와 같은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이 허구의 무대보다 훨씬 자극적인 리얼리티를 제공하며 공연 관객들을 앗아간 지는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늘 매진을 기록하는 스테디셀러 공연도 있다. 오는 11월 1일 예정된 빈 필 내한공연도 그중 하나로, 올해 초에 이미 전석 매진된 상태다. 이어서 내한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한국 공연계에 2~3년마다 찾아오는 단골손님이다. 이처럼 해외 오케스트라들의 공연이 빈번한 까닭은 서울이 그만큼 국제적인 도시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빈, 베를린, 뉴욕 등 도시를 대표하는 악단들은 단순히 공연 수익만을 목적으로 해외 투어를 다니지 않는다. 자신들의 투어를 협찬한 자국 브랜드 상품 홍보, 자신들의 도시를 소개하는 다양한 책자와 기념품들을 공연장 안팎에서 접할 수 있다. 한국 거주 해외 외교관들의 사교모임도 로비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다(그러나 그들 중 한국 외교관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케스트라는 정치 경제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전 ‘마중물’로서의 역할을 전통적으로 수행해 왔다. 반면 공연장 안에서는 자국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경쟁이 벌어진다. 바로 그런 이유로 1956년 보스턴 심포니는 공연 수익을 전부 투어 도시에 기부하면까지 옛 소련 투어를 강행했고, 1972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노 개런티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연을 성사시켰다. 시의회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음악계는 한국전쟁 이후 한동안 해외 악단의 내한공연만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한국 오케스트라의 첫 해외 투어는 1975년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의 동남아 순회공연이었다. 이 투어는 박정희 정권의 동남아 외교정책 지원 사격을 위한 것이었다. 베트남, 타이베이, 홍콩, 캄보디아 등 10개국을 방문한 이들은 당시 비행기가 아닌 해군 함정을 대여해 두 달간 험난한 여정을 소화했다.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한국의 여러 오케스트라들이 해외 투어를 통해 문화외교를 담당하고 있다. 한·러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러시아 순회공연을 다녀온 서울시향은 지난 8일 모스크바 공연에서 기립 박수를 받으며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이날 공연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현지 교민과 고려인들이 찾아와 자부심과 위안을 얻고 갔다는 전언이다. 지난 2일 유럽 투어를 시작한 부천시향 또한 유서 깊은 베를린 필하모닉 홀을 포함해 세 차례 공연을 모두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우연히 두 오케스트라 모두 순회공연 중에 재독 작곡가 조은화의 협주곡 ‘장구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자연, 스스로 그러하다’를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소개했다. 세계 여러 글로벌 오케스트라들이 그러하듯이, 보다 많은 한국의 오케스트라가 단순히 시민들의 예술 향유와 복지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공공외교를 지향하고 무역경제를 지원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음악 칼럼니스트·숙명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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