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여자들이 무슨 공놀이를”… 사람들 색안경이 문제다

여자야구 국가대표 주전 포수인 최민희씨가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국여자야구연맹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자 야구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민석 기자
 
여자야구대표팀이 지난달 27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여성전용구장에서 훈련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에서 두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최민희씨다. 한국여자야구연맹 제공
 
국가대표팀 에이스인 김라경(왼쪽 사진)이 지난해 8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여자야구월드컵에서 투구를 하고 있고 안재은(오른쪽 사진)이 같은 대회에서 타격을 하는 모습. 한국여자야구연맹 제공


8세 초등학교 딸아이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다. 그러나 주말이면 변신한다. 딸 수현이를 ‘최대 조력자’인 시어머니에게 맡겨 두고 인천에서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여성전용 야구장으로 향한다. 토요일 오전부터 시작된 훈련은 밤까지 계속된다. 일요일 오후 훈련까지 마친 뒤에는 또다시 ‘인천 아줌마’로 재변신한다. 여자야구 국가대표 포수이자 리드오프인 최민희(30) 선수다.

소프트볼 선수 출신 야구 입문기

최씨의 야구 입문기는 다소 엉뚱하다. 친구가 밥을 사준다고 해서 야구장에 따라갔다가 야구의 맛에 빠진 케이스다. 벌써 4년 전이다. 이제는 전국 최강팀 중 하나인 ‘서울 후라’에서 포수와 내야수를 겸업하고 있다. 고등학생부터 직장인, 가정주부 등 25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야구를 즐긴다고 한다.

최씨는 학창 시절 소프트볼 선수였다. 중학교 3학년때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해 인천시청 소속 실업팀까지 10년 가까이 선수로 뛰었다. 여느 여성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육아가 문제였다. 어쩔수 없이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우연찮게 그녀의 곁에 찾아온 야구는 주변의 도움으로 중단없이 계속해 나갈 수 있다. 최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야구를 한다는 게 쉽지가 않다”며 “시어머니가 흔쾌히 아이를 봐주고 같은 운동 선수 출신인 남편이 음료수까지 경기장에 사다 나르며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국가대표 포수다”

최씨는 올해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첫 출전 경기가 오는 22일부터 26일까지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리는 ‘제4회 LG컵 국제여자야구대회’다. 국가대표팀과 상비군 성격의 B팀 등 한국 2개팀과 미국, 대만, 홍콩, 호주, 유럽, 일본 등 7개국 8개팀 170여명이 참가한다.

최씨는 이어 오는 11월 9일부터 15일까지 중국 중산시에서 열리는 ‘여자야구아시안컵’에도 출전한다. 내년 여자야구 월드컵 예선을 겸하고 있다. 아시안컵에서 4위 안에 들어야 월드컵 출전이 가능하다.

최초 여자선수 안향미

최씨처럼 야구가 좋아 모여서 선수들이 뛰고 있는 팀은 모두 41개팀이다. 755명이 속해있다. 다른 종목 출신 선수, 팀에 들어간 뒤 처음 배트와 공을 만져보는 이도 꽤 된다. 이들이 뛸 수 있는 전국 규모 대회는 4개가 있다. 선덕여왕배, 익산시장기, U-12 및 전국여자야구대회, LG배다. 지역별로 리그가 운영된다.

이 같은 여자 야구의 ‘처음’에는 언제나 안향미(38) 선수가 있다. 1999년 4월 30일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결승전. 덕수상고 3학년 안향미가 마운드에 올라 3개의 공을 던졌다. 우리나라에 야구가 도입된 이래 전국대회에서 처음 여고생이 마운드에 오른 날이다. 최고 구속은 105㎞였다. 2002년 일본으로 건너간 안향미는 도쿄 드림윙스에 입단해 2년 간 활약했다.

그리고 2004년 국내 최초의 여자야구팀인 ‘비밀리에’를 만들었다. 그해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일본 대표팀에 0대 53, 5회 콜드게임으로 지는 등 전패했다. 그러나 이를 바탕으로 2007년 한국여자야구연맹이 창설됐다. 16개팀 200명으로 출발했다. 당시와 비교하면 규모면에선 두 배이상 성장했지만, 내실은 변한 게 없다.

학교에는 여자야구 없다

각 지역의 리틀야구단을 살펴보면 여자야구선수들이 꽤 보인다. 그러나 학원 스포츠의 테두리로 들어가면 전무하다. 여자야구팀은 초·중·고는 물론이고 대학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실업팀도 없다.

국내 여자야구팀은 모두 동호회 형식으로 운영된다. 야구 선수는 본업이 아니다. 다른 직업이 있거나 가정주부들이다. 선수들이 내는 회비로 팀을 운영한다. 상당수 팀들이 야구장을 구하지 못해 떠돌이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들에게 있는 것은 야구에 대한 열정뿐이다.

일본의 경우 1950년대부터 여자야구 리그가 정착됐다. 2010년부터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프로야구 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4개팀이 있다. 여자 고교팀과 대학팀도 각각 30개씩 있다. 호주와 캐나다 미국 등은 프로리그는 없지만 상시적으로 국가대표팀을 운영하는 등 활성화돼 있다.

편견 깨는 게 가장 중요

여성 야구의 체계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리틀 야구와 유소년 야구, 그리고 실업팀까지 시스템을 갖춰야만 여자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실업야구팀의 창설이 중요하다. 한국여자야구연맹 김세인 운영부회장은 “여자야구도 직업이 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선 실업팀이 만들어져 돈을 받고 야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전국체전에 여성야구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김 부회장은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여성야구팀을 창설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야구에 대한 편견이다. 최씨는 “아직도 ‘계집애들이 뭐하러 공놀이를 하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안경을 벗어야만 여자 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석 선임기자 yskim@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