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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父女의 비극… 셔츠 안에 꼭 끌어안은 채 美접경 강물에 지다

엘살바도르 출신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와 그의 딸 발레리아의 시신이 24일(현지시간)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역인 리오그란데강 기슭에서 발견됐다. 부녀는 미국으로 가기 위해 강을 건너다 물살에 휩쓸렸다. 국민일보는 원칙적으로 시신 사진을 지면에 게재하지 않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비극적인 실상을 알리기 위해 게재를 결정했다. AP뉴시스


라미레스의 아내가 경찰에게 남편과 딸이 급류에 휩쓸리던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 AP뉴시스


미국으로 가기 위해 강을 건너다 익사한 이민자 아버지와 두 살배기 딸의 사진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유럽으로 가기 위해 지중해를 건너다 터키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시리아 난민 소년 아일란 쿠르디를 빗대 ‘미국판 쿠르디’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AP통신과 미 CNN 등은 엘살바도르 출신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5)와 그의 23개월 된 딸 발레리아가 전날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를 흐르는 리오그란데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기사와 함께 보도된 사진에는 강가 수풀 근처에서 얼굴이 수면에 잠긴 채 나란히 엎드린 부녀의 모습이 담겼다. 발레리아는 아버지의 검은 티셔츠 속에 몸을 넣은 상태였고 오른팔은 아버지 목을 감고 있다. 이 사진은 멕시코 현지 언론 라호르나다의 사진기자 훌리아 레두크가 찍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들 가족은 지난 4월 3일 엘살바도르를 떠나 멕시코 남부 국경 타파출라의 이민자 보호소에서 2개월 머무른 뒤 지난 23일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도착했다. 하루 뒤 라미레스는 딸과 강을 건너 미국 쪽 강둑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멕시코 쪽에 남은 아내를 데려오려고 다시 강을 건널 때 혼자 남겨져 놀란 발레리아가 라미레스를 따라 강에 뛰어들면서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미레스의 어머니 타니아 바네사 아발로스(21)는 눈앞에서 남편과 딸이 목숨을 잃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AP통신은 부녀의 비극이 시리아 난민 쿠르디의 사진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유럽을 향해 2015년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 사망한 채 터키 해변으로 떠밀려온 쿠르디 사진은 시리아 난민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보여줬다.

미국 민주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을 비판했다. 2020년 미국 대선의 민주당 경선주자 중 한 명인 코리 부커 상원의원(뉴저지)은 트위터에 “도널드 트럼프의 비인간적이고 부도덕한 이민정책의 결과”라며 “이런 일이 우리의 이름 하에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호아킨 카스트로 미 연방 하원의원(텍사스)도 “사진을 보고 있기 힘들다”며 “(이 사진이) 입법가들과 더 많은 미국 국민의 변화를 만들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녀가 숨진 마타모로스 지역의 리오그란데강은 미국으로 불법 입국을 시도하는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의 주요 경로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수심이 깊고 물살이 빨라 사망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올해도 이 강을 건너다 숨진 사람이 수십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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