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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국 돌아가야 한다는 조상 말 때문에 귀국했지만, 현실은 냉담"

영주귀국 독립유공자 유족회가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모습. 유족회는 “많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현실이 3·1운동 100주년의 어두운 그늘”이라며 정부가 배려해줄 것을 촉구했다.영주귀국 독립유공자 유족회 제공


중국 지린성에 살다가 2005년 영주귀국한 최금자씨가 3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자택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씨는 만주 봉오동전투의 주역 중 한 명인 최진동 장군의 손녀다. 64세인 최씨는 이곳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김성훈 기자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독립유공자의 후손 중 많은 이들은 고되게 살아가고 있다. “꼭 한국에 되돌아가야 한다”는 조상의 말을 가슴에 품고 왔지만 고국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생각보다 냉담한 것이다.

영주귀국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귀국을 결정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조상의 고향에서 살라는 조부모·증조부모의 조언이 계기가 되기도 했고, 원래 살던 외국 땅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경우도 있다.

중국 지린성 옌지에 살다가 2003년 귀국한 우모(57)씨의 증조할아버지는 경북 영덕에서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유공자다. 우씨는 중국에 있던 증조부와 할아버지, 아버지의 묘가 매년 장마철마다 호우로 유실되자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묘를 옮겨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장 때문에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우씨는 “처음에는 정착할 생각이 없었지만 머물다보니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증조할아버지 고향에 가보니 친근감이 든 것이다. 17살 때 돌아가신 할머니가 “3대 독자에 장손인 너는 꼭 한국에 돌아가 살아야 한다”고 했던 말도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

지린성 투먼에 거주하다 2005년 귀국한 최금자(64)씨도 할아버지의 묘를 한국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한국과 처음 연이 닿았다. 한국 정부(전두환정부)에서 대전현충원 사진과 기념품을 보내온 것이다. 최씨의 할아버지는 봉오동전투의 주역인 최진동 장군이다. 최씨는 “자식들은 꼭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다”며 “한국에 와서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할아버지의 심정을 늦게나마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씨와 최씨를 비롯한 영주귀국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대우가 아직까지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국내에서 새롭게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이들의 주거 문제가 해결이 안 돼 단칸방이나 반지하방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세대별 가족수에 따라 정착금을 차등지급하고 있지만 살 집을 마련하기엔 금액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씨는 귀국 후 받은 정착금 4500만원으로 집을 얻기 어려워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지하 셋방에서 5년 넘게 살았다. 지하에 살 때는 물이 새고 벽이 썩는 환경 때문에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다고 한다. 우씨도 지은 지 40년이 넘은 다세대주택에 살고 있다. 우씨는 “관건은 집”이라며 “집을 제공하는 게 어렵다고 해도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대우가 탈북자만도 못하다”며 “중국에서는 ‘고려인 후손’이라고 차별을 받았는데, 한국에선 ‘중국놈의 새끼들’이라고 욕을 먹어 정말 서럽다”고 말했다. 우씨는 중국에 있는 아들에게 한국에 오라고 했더니 아들은 “훈장까지 받았는데 왜 굳이 한국에 가서 이런 집에서 고달프게 살아야 하느냐”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런 후손들의 사정은 2016년 국가보훈처가 실시한 ‘영주귀국 독립유공자 유족의 생활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응답자 371명 중 177명(47.6%)이 ‘주택 지원 등 복지 시책 부족으로 인한 정착 초기 불안정’을 귀국 후 가장 힘든 점으로 꼽았다. 이어 32.5%는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한 경제적 곤란’을 들었다.

자기 집을 마련해 사는 후손은 19.6%에 불과했다. 거주 주택의 가격은 평균 8579만원 수준이었다. 5000만원 미만이 48.9%로 가장 많았고 5000만~1억원 미만(27.7%)이 그 다음으로 많았다. 또 상당수가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자주 이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건석 독립유공자 유족회 상임부회장은 “한국 국적은 취득했지만 생활 형편이 너무 어려워 국내에 정착하지 못하고 전에 살던 나라로 되돌아가는 후손들도 많다”며 “정부에서 과거보다 정착금과 생활지원금을 늘려 지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임대주택 희망자는 많은데 그에 비해 물량 자체가 적다”며 “정착지원금 등은 내년 예산 편성 때 늘려서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재희 김성훈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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