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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터뷰] “유언장 쓰고 오지 여행… 처절한 외로움이 나를 깨웁니다”

도용복씨가 21일 ㈜사라토가 부산 본사 사옥에서 오지여행 중 찍은 사진들을 배경으로 여행 후기를 들려주고 있다.


왼쪽은 도씨가 2011년 1월 아마존으로 떠나기 전 작성한 유언장. 오른쪽은 도씨가 평소 독서나 사색을 통해 떠오른 단상들을 적어놓은 다이어리 메모장.


도용복씨가 쓴 오지여행기는 모험을 통한 자기성찰이 돋보인다.


도용복(76) ㈜사라토가 회장은 해마다 65일간 오지여행을 떠난다. 벌써 27년째다. 우리 나이로는 올해 희수(喜壽)를 맞았지만 체력은 웬만한 40, 50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열정과 호기심은 아직도 청년이다.

그의 오지여행은 매우 특이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낭만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뢰를 밟아 죽을 뻔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빈민가에서는 강도를 만나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경주인 ‘다카르 랠리’에 도전했다가 모래폭풍에 동료를 잃은 적도 있고, 아마존에서는 독사에 물려 급사한 원주민 가이드를 들쳐 업고 정글을 내달린 적도 있다. 위험이 도사리는 줄 알면서도 그는 오지여행을 중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배낭을 꾸리기 전 유언장을 쓰고 여행을 떠난 게 지금까지 스무 번이 넘는다. 그렇게 해서 171개국을 다녔고, 4권의 여행기를 펴냈다. 그야말로 목숨 걸고 오지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도 회장을 지난 21일 부산의 사라토가 본사에서 만났다.

-왜 그렇게 위험한 여행을 고집합니까. 전문산악인도 아닌데 파미르고원 3800m 고지에 올랐다가 고산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납치와 테러 위험을 무릅쓰고 나이지리아 등 서부 아프리카 일대를 누비기도 했습니다.

“쉽고 편안한 여행을 하면 누가 내 얘기에 귀 기울이겠습니까(웃음). 사업이 번창하던 40대 후반에 고엽제후유증이 찾아왔습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출장 도중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도 있어요. 그러면서 나를 돌아봤어요. 내가 돈 버는 기계로, 돈의 노예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이라면 남은 인생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다 죽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나이 50이 되던 해부터 오지여행을 시작했어요.”

-도 회장에게 여행이란 무엇입니까.

“여행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여정입니다. 특히 오지를 여행하면 깊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고, 그런 처절한 외로움 속에서 살아 있는 감동을 느낍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TV도 없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곳일수록 사람의 순수한 본성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여행의 매력은 그런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들과의 추억을 쌓아가는 것 아닐까요.”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사람, 인생의 여유를 즐기고 싶은 사람이 지금 곁에 있다면 그들에게 각각 어떤 여행지를 추천하겠습니까.

“모두 아마존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마존에서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생의 좌절을 맛본 사람은 거기서 희망을 볼 것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존에서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은 겸손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나는 아마존을 여섯 번 여행했습니다. 아마존이 워낙 광대한 지역이라 같은 곳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갈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오페라 ‘나비부인’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언제 음악 공부를 했습니까.

“어려서 다니던 시골 교회에 풍금이 있었습니다. 중학생이었을 때 교회 장로님에게 풍금을 배워 예배시간에 반주를 했습니다. 집안이 어려워 야간고등학교와 전문대로 진학하면서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오지여행을 하면서 딸아이가 유학 중인 이탈리아에 한 달간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부산국제합창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도 회장은 음악뿐 아니라 사진과 영화 등에도 조예가 깊다. 또 대구한의대 특임교수, 부경대 초빙교수를 맡고 있을 뿐 아니라 부산재즈클럽 회장, 주한엘살바도르 명예영사, 뉴월드오케스트라 단장 등 다양한 직함을 갖고 있다. 한 달에 절반 정도는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는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그런 그를 지인들은 ‘한국의 조르바’라고 부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처럼 관습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거침없이 자유로운 인생을 누리며 살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꿈이 뭐였나요.

“15살 때 영화 ‘자이언트’를 봤어요. 제임스 딘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탄 자동차가 멋있어 보였어요. 아, 나도 사업으로 돈을 벌어 저렇게 멋진 차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땐 그게 롤스로이스인 줄 몰랐어요. 사업을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대학 졸업 후 베트남전에 자원했어요. 남들은 베트남에 가지 않으려고 병역기피를 하거나 끌려가더라도 1년 만에 돌아오는데, 난 목숨 걸고 3년을 버텼어요. 제대하고 전파상을 차렸고, 핸드백을 만들어 수출하면서 돈을 긁어모았어요. 그리고 2001년 골프용품 업체 사라토가를 세웠지요. 작년에 롤스로이스 오픈카를 장만했어요. 어릴 적 꿈을 이루기까지 60년이 걸렸네요, 하하.”

-돈 많이 버는 사업가가 꿈이었나요.

“제 인생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어릴 때는 가난했기 때문에 돈 버는 게 꿈이었어요. 그러나 세계 여행을 많이 하면서 제 꿈이 달라졌어요. 제 목표는 인격 완성입니다.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지요.”

-매번 강연 때마다 젊은이들에게 ‘이스라엘 키부츠로 가라’는 주장을 빼놓지 않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계 40여개국에서 모여든 젊은이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단기간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키부츠는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인데, 거기 가려면 18~35세로 간단한 영어만 할 줄 알면 됩니다. 2~6개월간 머물면서 월 150달러 정도의 용돈도 받을 수 있습니다. 키부츠를 다녀온 젊은이들은 대부분 키부츠 경험이 자기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고 말합니다. 나의 강연을 듣고 키부츠를 다녀온 사람이 수백명은 될 겁니다. 이 중 150여명은 매년 정례 모임을 갖고 있지요.”

-사업가, 여행가, 음악가, 교수, 작가, 외교관, 교육자…. 여러 직업을 가졌는데 어떤 것이 가장 자랑스럽습니까.

“강연을 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내 강연을 듣고 나서 ‘인생이 달라졌다’ ‘고맙다’는 문자나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이 청중의 10%쯤 됩니다. 그럴 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희열을 느낍니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이에 비해 대단히 건강해보입니다. 비결이 뭔가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하하. 사실 지금도 고엽제 약을 먹고 있습니다. 잠도 하루 4시간 이상 자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체력은 자신있습니다. 매일 밤 9시30분부터 2시간씩 운동하는 걸 철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침식사는 고구마와 야채 위주로 하고, 이후 6시간 간격으로 점심과 저녁을 먹습니다.”

-베트남에 가기 전 어머니를 전도하셨다구요.

“제가 베트남전에 자원하자 어머니는 한사코 말리셨어요. 남들 다 죽어 돌아오는 곳으로 왜 가려고 하느냐고.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어머니가 교회 나가면 나는 안 죽어요’라고. 어머니는 그때까지 불교신자였어요. 3년 후 돌아왔더니 어머니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다니셨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처음에 하나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아들만 살아 돌아오기를 빌었답니다. 일자무식이셨던 어머니는 성경도 읽으셨어요. 나중에는 교회 권사가 되어 저더러 목사가 되라고 권고하셨어요. 사업하느라 목사가 되긴 어려웠지만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이만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 회장은 2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사무쳤는지 이 대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부산=글·사진 전석운 미래전략국장 겸 논설위원 chunceda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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