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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사라진 보물 ‘만국전도’ 식당 벽지 안쪽서 찾았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와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28일 서울 중랑구 사무실에서 회수한 뒤 복원한 보물 제1008호 ‘만국전도’를 공개하고 있다. 1994년 도난당한 만국전도는 국내 최고 서양식 지도로 평가받는다. 
 
11년 만에 다시 찾은 양녕대군의 친필 ‘숭례문’ 목판에 대해 수사대원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지난해 11월 28일 경찰은 석달여 전 도주한 용의자를 쫓아 경북 안동의 한 식당을 급습했다. 여느 식당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 곳이었다. 식당 한편 구석진 곳, 가전기기 뒤편의 갈색 벽돌문양 벽지 안에선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또 가로로 한 번 접힌 지도가 나왔다. 1994년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의 함양박씨 문중에서 도난된 보물 제1008호 ‘만국전도(조선시대 세계지도)’였다.

사라졌던 만국전도가 25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조선 중기인 1661년 문신인 여필(汝弼) 박정설이 ‘세계지리서 직방외기’(중국 명나라 말기 이탈리아 선교사 알레니가 저술한 세계지리서)에 실린 만국전도를 필사한 것이다. 국내에서 제작된 세계지도로는 현재까지 확인된 것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됐다. 정제규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만국전도는 문중의 역사적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며 “당시에 중국 중심 세계관의 지도가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세계관의 확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만국전도는 경찰과 문화재청의 문화재 은닉범 수사로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만국전도를 숨긴 혐의로 남성 A씨(50)를 29일 불구속 입건했다. 그는 만국전도와 1800년대 간행된 전적류 116책이 장물인 것을 알면서도 취득, 은닉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를 받는다.

경찰과 문화재청은 2008년 전남 담양에서 도난된 양녕대군의 친필 목판 6점도 찾아냈다. 양녕대군 후손의 재실에 보관돼 있던 것으로 ‘崇禮門(숭례문)’ 목판 2점과 ‘後赤壁賦(후적벽부)’ 목판 4점이다. 경찰은 2017년 11월 경기도 양평의 한 허름한 비닐하우스에 딸린 창고를 압수수색해 목판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 문화재가 장물인 줄 알고도 구입해 은닉한 혐의로 B씨(70)를 불구속 입건했다.

‘숭례문’ ‘후적벽부’ 목판은 양녕대군의 친필 목판으로서 가치가 높다. 특히 ‘숭례문’ 목판의 경우 현존하는 유일한 목판이다. 정 전문위원은 “양녕대군의 서체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며 “국가지정문화재는 아니지만 가치를 감안하면 지방지정문화재 등록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A씨와 B씨가 문화재 절도죄의 공소시효(10년)가 만료되길 기다렸다가 경매업자를 통해 처분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보호법 상 문화재은닉죄의 공소시효는 은닉 시점이 아니라 은닉 상태가 끝나는 순간 시작된다. 예를 들어 경매사에 출품을 의뢰했을 때부터 공소시효 기산이 시작된다. 이 때문에 문화재은닉죄의 공소시효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A씨와 B씨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A씨는 1300만원을 주고 모르는 사람에게, B씨는 500만원을 주고 현재는 사망한 사람에게 해당 문화재를 선의로 구입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범행을 숨기려는 문화재 사범들의 일반적인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오랫동안 고미술품 매매업을 하면서 같은 범죄 전력이 있고 B씨도 오랜 시간 골동품 매매업을 해오며 탁본 등에 조예가 있다”며 “모르고 샀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화재보호법 상으로도 도난문화재로 문화재청에 등재가 된 이후에는 선의취득이 인정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에는 도난된 국가지정문화재가 12점(국보1, 보물11)이 있다. 조선의 명필가이자 세종의 셋째 아들이기도 한 안평대군의 글씨 ‘소원화개첩(小苑花開帖)’(국보 제238호), 안중근 의사의 유묵(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 중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허름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함께 도를 논할 수 없다)’(보물 제569-4호) 등이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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