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봉준호x송강호 신뢰로 함께한 20년 그리고 ‘기생충’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들고 금의환향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왼쪽 사진) 감독과 배우 송강호.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는 데 대해 봉 감독은 “오스카 선정 방식은 지자체 선거운동처럼 매우 길고 복잡하다. 설레발은 금물이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빈과 부는 늘 공존한다. 곰팡이 핀 반지하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종일 볕이 드는 대저택에서 호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이도 있다. 싸구려 피자 한 판을 나눠먹는 것도 사치인 이가 있는가 하면 끼니마다 최고급 식재료로 만든 건강식을 차려먹는 게 당연한 이도 있고.

영화 ‘기생충’이 발 디디고 있는 세계도 그렇다. 물질의 유무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계급이 분리된 사회. 식구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가족과 IT기업을 이끄는 박 사장(이선균)네 가족이 양극단의 두 계층을 대표한다. 두 가족이 얽히게 되며 벌어지는 소용돌이는 쓰디쓴 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보인다.

배경은 지극히 한국적이나 전 세계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각국에서 모인 9명의 칸영화제 심사위원단이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여한 이유일 테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광의 순간을 함께한 봉준호(50·이하 봉) 감독과 배우 송강호(52·이하 송)를 29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각각 만났다. 겹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데 묶어 정리해봤다.
 
극 중 반지하에서 피자 상자 접기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기택(송강호)네 가족.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황금종려상 수상 호명 직후 두 분이 격하게 포옹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봉=강호 선배가 제 몸을 흔들어서 저는 흔들렸을 뿐입니다(웃음).

△송=마지막 순서였으니 우리가 호명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실제로 닥치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시상식 이후 심사위원들과 함께한 뒤풀이 자리에서는 어떤 대화가 오갔나요.

△봉=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송강호 배우가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였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황금종려상이 결정되는 바람에 규정상 연기상까지 중복 수상을 할 수 없었다며, 자신들도 아쉬웠다고요.

△송=끝까지 감추려 했는데 감독님이 얘기를 해버리셨네요(웃음). 작품상을 받았으니 팀원들 모두가 함께 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극의 구조상 두 계급을 직관적으로 대비시키기 위한 설계가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봉=익숙함이 가지는 함정이 있어요. 예컨대 드라마나 영화에서 착하고 정의로운 빈자가 나오면 그 반대편에는 탐욕적이고 폭력적인 부자가 그려지죠. 하지만 그게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보다 사실적인 모습을 담으려 하다 보니 다층적인 캐릭터들이 만들어졌어요. 양쪽 다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나쁜 모습이 뒤범벅돼있죠.

△송=영화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으로 볼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중요하게 여긴 건 현상 밑에 깔린 인간 존엄에 대한 메시지였습니다. 우리 스스로 관념적인 선을 긋고, 타인에 대한 선입견으로 계급을 만들고 있지 않냐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해온 영화적 동지이신데,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에 이어 네 번째 협업을 하면서 느끼신 감회가 남다를 법합니다.

△봉=송강호에게는 작품 자체의 성격이나 느낌을 규정짓는 힘이 있어요. 특히 제 영화의 상황은 기이하거나 독특한 게 많은데, 그가 연기함으로써 관객이 그것을 믿게 만들죠. 설득력, 좀 더 공격적으로 표현하자면 관객을 제압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게 시나리오 작업에도 영향을 미쳐요. 지문과 대사가 더 과감해지죠. 강호 선배라면 이 또한 설득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니까.

△송=봉 감독과는 워낙 (스타일이) 잘 맞아요. 흔히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고 하는데 그건 기능적이고 현상적인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봉 감독의 본질은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통찰이거든요. 저는 그의 테크닉도 존중하지만, 예술가로서 가진 태도를 존경합니다.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한참 우러러보게 되죠(웃음).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봉=그건 상영이 끝날 때쯤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설렘과 조마조마한 마음뿐이에요. 제게는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제일 중요하니까.

△송=최고의 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영화를 하겠지만 세월이 흘러도 ‘기생충’이 가지는 의미는 퇴색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 영화 100년에 있어서도 중요한 업적을 세우지 않았나,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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