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계 ‘밉상’, 가정 꾸리자 3년 만에 2승

재미교포 케빈 나가 27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콜로니얼CC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찰스슈와브 챌린지에서 우승한 뒤 달려오는 큰 딸 소피아를 향해 ‘아빠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리고 있다. AP뉴시스
 
딸을 안은 채 만삭인 아내에 입맞춤을 하고 있는 케빈 나. AP뉴시스
 
케빈 나가 부상으로 받은 1973년형 닷지 챌린지 클래식카에 올라탄 모습. 케빈 나는 이 차를 캐디에게 선물했다. AP뉴시스


재미교포 케빈 나(36)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유명 인사다. 그런데 그 유명세가 그리 좋지 못한 ‘악명’이다. 늑장 플레이와 불같은 성격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케빈 나는 항상 주변의 미움을 샀다. 케빈 나는 공을 칠 때마다 많은 웨글(클럽 헤드를 좌우로 흔드는 것)과 긴 프리 샷 루틴으로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골퍼였다. 실제 미국 골프채널이 선정한 2012년 황당사건 톱10 중 4위가 케빈 나의 슬로우 플레이었다. 그해 5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3라운드 14번홀에서 케빈 나는 무려 10번의 웨글을 한 뒤 티샷을 해 동반 라운드를 펼치는 선수와 갤러리들의 한숨을 자아냈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 경기를 망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2011년 4월 발레로 텍사스오픈 1라운드 9번홀(파4)에선 규정타수보다 12타를 더 쳐 16타 만에 홀아웃해 듀오데큐플 보기를 범했다. PGA 투어 파4홀 최다 타수 불명예다. 당시 두 번째 티샷을 날린 뒤 골프클럽을 내던진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50만뷰 이상을 기록했다.

사실 케빈 나는 골프 신동으로 불렸다. 8세 때인 1991년 미국으로 이민 간 케빈 나는 2003년 말 20세의 나이로 퀄리파잉스쿨에서 최연소로 합격해 이듬해 PGA 투어에 입성했다. 이후 한 번도 투어 카드를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꾸준한 활약을 이어 갔다. 그런데 쉽게 결실을 맺지 못했고 2011년 슈라이너스 아동병원 오픈에서야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한동안 우승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이런 그를 되살린 것은 가족의 힘이었다. 2016년 결혼한 케빈 나는 그 해 첫 딸을 얻었다. 이후 그는 웃음 많은 딸바보가 됐다. 마음의 여유가 넘쳤고, 늑장플레이도 차츰 고쳐 나갔다. 이에 지난해 7월 밀리터리 트리뷰트에서 7년 만에 우승했다.

마음 자세를 고쳐나가자 동료 선수들도 그를 반겼다. 지난 3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케빈 나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 동반 라운드를 펼쳤다. 그런데 우즈가 공이 홀에 들어가자마자 서둘러 공을 빼내는 케빈 나를 흉내 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리고 27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콜로니얼CC(파70·7209야드)에서 열린 찰스슈와브 챌린지에서 최종합계 13언더파로 토니 피나우(미국)를 4타 차로 제치고 세 번째 정상에 올랐다. 결혼 전 12년 동안 1승에 그쳤지만 가정을 꾸린 뒤 3년 만에 2승을 달성한 것이다. 그는 큰 딸 소피아를 끌어안으며 한국말로 “아빠 1등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만삭의 아내 배를 쓰다 듬으며 “어우, 우리 아기”라고 외쳐 웃음을 자아냈다. 케빈 나는 “선수로서는 앞으로 더 많은 우승을 하고 싶고, 개인적으로는 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케빈 나는 또 통 크게 우승자에게 주는 부상인 11만 달러(1억3000만원)짜리 1973년형 닷지 챌린지 클래식카를 캐디에게 선물했다.

케빈 나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131만4000달러(15억7000만원)를 받아 역대 34번째로 통산 상금 3000만 달러(3015만 달러)를 돌파한 선수가 됐다. 한국 또는 한국계 선수로는 통산 8승의 최경주(49·3248만 달러)에 이어 두 번째다. 세계랭킹도 52위에서 31로 껑충 뛰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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