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종합

미국 시민권 취득 못해 불법체류자로 내몰리는 한인 해외입양인 2만명


 
추방 전 애덤 크랩서 가족. 세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크랩서는 2016년 11월 한국으로 추방됐다. 미 HBO 캡처
 
미 입양인권익캠페인(Adoptee Rights Campaign) 회원들이 모든 해외입양인에게 입국과 동시에 시민권을 자동 부여하는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입양인권익캠페인 사이트 캡처


보건복지부는 지난 11일 제14회 입양의 날에 맞춰 2018년 입양 통계를 발표했다. 국내외로 681명이 입양됐다. 국외입양은 303명(전체 입양의 44.5%)이었고, 이들 가운데 미국으로의 입양이 188명(62%)으로 절반을 훌쩍 넘겼다. 보건복지부는 2008년 이전에는 국외입양이 70%에 달했으나 2009년 이후 국내입양 비율이 점차 늘었다고 밝혔다.

앞서 국내 언론은 미국 네바다주 의회가 지난 8일 로스앤젤레스 김완중 한국총영사와 한인 입양인 레아 엠퀴스트에게 이날 의회에서 통과된 결의안 하나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 합법적으로 입양됐어도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입양인들이 시민권을 받을 수 있게 촉구하는 결의안이다. 네바다주의 결의안은 캘리포니아, 하와이주, 일리노이, 켄터키, 조지아주에 이어 6번째다.

엠퀴스트는 생후 4개월에 입양됐다. 미 해군으로 10년 넘게 복무하고 이라크에도 파병 근무했다. 국내언론들은 엠퀴스트가 전역 후 한국 방문을 위해 여권 발급신청을 했고, 이때 본인이 시민권이 없음을 알게됐다고 전했다.

합법적인 입양이 국적 취득의 근거가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2000년 아동시민권법(Child Citizenship Act)이 제정되기 전까지 미국에 입국한 해외입양아에겐 시민권이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입양을 위한 법적 과정과 입양아의 귀화, 시민권 취득에 필요한 서류와 비용 문제 등이 모두 부모에게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실수나 누락이 발생하면 해외입양아는 시민권을 취득할 수 없었다. 2001년 2월부터 시행된 아동시민권법으로 외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7만5000명이 미국 시민권을 자동취득했다.

문제는 아동시민권법의 헛점이다. 제정 당시 18세 이상 성인(1983년 이전 출생)은 이 법을 적용받지 못했다. 1945~98년에 해외에서 입양돼 미국에 온 어린이 가운데 2만5000~4만9000명이 시민권이 없으며, 이 가운데 한인은 1만8000~2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정부 이후 ‘불법체류 이민자’(undocumented immigrants)에게 상황이 불리해지고 있다. 아동시민권법의 보완은 하루하루 추방의 위협으로 불안하게 살아가는 해외입양인들에게 시급하다.

애덤 크랩서(한국명 신성혁)는 세 살이던 1979년 입양됐다. 하지만 그는 부인과 자녀 셋을 모두 미국에 남겨둔 채 2016년 낯선 한국으로 추방됐다. 38년 동안 그에게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일들은 그가 추방 위기에 처한 당시부터 미국 CNN 뉴욕타임스 등과 국내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됐다.

크랩서는 지난 1월 우리 정부와 입양기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AP는 “크랩서의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는 당시 입양과정에서 관련 법을 준수했으며 입양아동의 시민권 취득은 미국 입양부모와 기관의 주된 책임이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한국의 보건복지부는 정부가 한국으로 추방된 해외입양인의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후 추방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해외입양인들은 2015년 입양인권익캠페인(Adoptee Rights Campaign)을 시작했다. 한인입양인의 권익을 위해 2017년 창립된 비영리단체 월드허그파운데이션(World Hug Foundation·이사장 길명순)과도 함께하고 있다. 지난 4월 재단은 생후 7개월에 미국으로 입양된 조이 알레시가 52년만에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왔다.

캠페인의 중점사업은 아동시민권법의 맹점을 보완해 수 만 명의 해외입양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 제정이다. 2018년 미 연방 상원에 상정된 입양인시민권법안은 계류 중에 안타깝게도 회기가 만료됐다. 그리고 지난 14일 입양인시민권법안이 새로 연방 하원에 발의됐다.

크랩서의 결정적인 추방 근거는 과거 범죄기록이었다. 심한 구타와 학대를 겪어야 했던 크랩서는 결국 두 번째 입양된 집(위탁까지 포함하면 세 번째 가정)에서 쫓겨났다. 16세 때였다. 당시 그는 한국에서 가져온 한글 성경과 신발을 가지러 다시 그 집에 들어갔다가 주택침입죄로 붙잡혔다. 그것이 그의 첫 번째 죄목이었다.

미국에선 가정에 자녀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입양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잖다. 고아를 돌보라는 성경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신앙이 입양으로 이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다. 가정의 달에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자녀 이야기이다.

박여라 영문에디터 yap@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