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비디오테이프 방식 뮤비, 촌스럽지만 왠지 끌리네


 
요즘 가요계에는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했을 때 느껴지는 분위기를 뮤직비디오 제작에 활용한 사례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위쪽 사진부터 그룹 공일오비의 ‘325㎞’,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가수 유키카의 ‘네온’, 가수 아이디의 ‘앤듀 뉴’ 뮤직비디오의 각 장면들. 유튜브 캡처


그룹 공일오비가 지난 14일 선보인 노래 ‘325㎞’의 뮤직비디오는 무척 예스럽다. 기본적으로 낮은 화질이 비디오테이프 영상을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노래 제목이 등장하는 자막도 1980, 90년대 유행한 비디오게임 로고를 흉내 냈다. 편집도 오래전에 만들어진 느낌이 나도록 촌스럽게 했다. 이따금 깔리는 노이즈 또한 낡은 분위기를 풍긴다. ‘구식’으로 똘똘 뭉쳤다.

이런 방식의 연출은 이제 제법 흔하다. 이달만 해도 아이디의 ‘앤드 뉴’, 락커스빈의 ‘불러본다’, 넘넘의 ‘째깍째깍’, 최예근의 ‘고릴라’, 일공육공의 ‘저스트 워너 다이 투데이’, 이그지스트의 ‘왓에버’ 등 비디오테이프 화질을 콘셉트로 택한 뮤직비디오가 여럿 나왔다. 선명하지 못한 화면의 영상 제작은 우리 대중음악계의 트렌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흐름을 선도한 대표적인 인물은 미국 가수 브루노 마스다. 그가 2013년에 공개한 ‘트레저’ 뮤직비디오는 몹시 흐릿했다. 영상이 깔끔하지 않은 탓에 정식 뮤직비디오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 이도 많았다. 하지만 노래 제목 옆에는 ‘공식’이라는 뜻의 영어가 기재돼 있었다.

마스는 노래의 분위기를 살릴 목적으로 거친 질감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트레저’의 장르는 70년대에 유행한 디스코다. 오래된 느낌을 풍김으로써 이 양식이 지닌 시대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노래가 세계적으로 히트함에 따라 ‘비디오테이프 효과’도 널리 퍼지게 됐다.

한국도 다수의 가수가 마스처럼 과거에 인기를 얻은 장르를 소화할 때 비디오테이프 질감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있다. 80년대 힙합 사운드를 추구한 45RPM의 ‘붐박스’, 90년대 초반에 성행했던 뉴 잭 스윙 골격을 취한 박재범과 기린의 ‘시티 브리즈’가 주요 예가 될 것이다.

유빈의 ‘숙녀’, 뮤지의 ‘아가씨2’, 재한 일본인 가수 유키카의 ‘네온’ 같은 시티 팝 노래도 같은 맥락으로 언급할 수 있다. 시티 팝은 80년대에 일본에서 사랑을 받은 스타일이다. 이 노래들도 그 시절 정서를 구현하고자 비디오테이프에 생기는 노이즈 등을 영상에 담아냈다.

투박한 것이 적은 현실도 저화질 뮤직비디오의 증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돌 그룹이 성황을 이루면서 화려함과 세련미를 뽐내는 뮤직비디오가 흔해졌다. 화사한 작품이 넘쳐나다 보니 화질이 떨어지고 연출이 조악한 영상이 오히려 귀해지는 상황이 왔다.

젊은 세대 대부분은 비디오테이프를 구경조차 못해 봤을 것이다. 비디오테이프가 DVD 같은 다른 저장 매체에 밀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점이 비디오테이프 기법의 뮤직비디오를 참신한 것으로 느껴지도록 한다. 비디오테이프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는 과거의 문물을 새롭게 즐기는 ‘뉴트로’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동윤<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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