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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하나금융에 완패… 정부와 전쟁은 결과 예단 못해

사진=뉴시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하나금융지주를 상대로 국제상공회의소(ICC)에 제기했던 14억430만 달러(약 1조6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당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매각할 때 시간 지연과 가격 인하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전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나금융에 책임이 없음은 물론 론스타가 하나금융의 법률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완전한 패소다.

이에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결과에 더욱 관심이 쏠리게 됐다. 론스타가 ICC 중재에 앞서 제기한 ISD에선 손해를 주장하는 액수가 46억7950만 달러(약 5조2000억원)에 이른다.

그래서 ‘진짜 전쟁터’라 불린다. 일단 정부 반응은 긍정적이다. 다만 하나금융의 책임이 전무하다는 이번 판정이 향후 ISD에서 정부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을 높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나금융은 15일 론스타의 손해배상 청구 기각을 주문한 ICC 중재 판정 결과를 공개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싸게 팔게 된 과정에서 하나금융의 ‘기망(허위사실로 착오에 빠지게 함)’이나 ‘협박’이 없었다는 게 요지였다. 론스타는 2010년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지분 51.02%를 4조6888억원에 넘긴다는 계약을 맺었지만, 2012년 약 7000억원 낮은 3조9156억원에 매각했었다.

그간 론스타는 하나금융이 금융 당국을 빙자하며 매각 가격을 낮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ICC는 “론스타는 하나금융의 기망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가격 인하가 없으면 당국이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판정했다. 론스타는 하나금융이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승인도 없다”는 식으로 강박했다고 주장했다. ICC는 “전체적인 사실관계를 종합해 보면 이를 협박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기망과 강박이 없었으니 론스타의 착오에도 이유가 없었다. 론스타는 그간 하나금융 측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부 승인이 미뤄지는 데도 적극 나서지 않았다고도 강변했다.

이에 대해 ICC는 “하나금융은 계약에서 요구한 바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며, 론스타와 충분히 협력 협의했다”며 계약 위반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금융권에서는 “외환은행을 팔기 싫으면 안 팔면 그만이다. 론스타로서는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소송 제기였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번 소송에서 하나금융의 책임이 전혀 인정되지 않은 점이 ISD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정부 ‘론스타 분쟁대응단’의 한 당사자인 금융위원회는 이날 예정에 없던 설명회를 열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결국 론스타 주장이나 논리의 연결고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라며 “상식적으로 보면 정부의 ISD에 불리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나금융의 완전한 승소가 부담스러워졌다는 정반대 해석도 제기된다. 국제통상 분야의 권위자인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론스타가 가격을 인하해 팔 때의 책임이 하나금융에 있지 않다는 것은, 결국 책임이 우리 정부에 있다는 얘기가 된다”고 해석했다. 최 교수는 “‘진짜 전쟁터’인 ISD에서 우리 정부의 배상책임 액수는 2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본다”며 “이번 ICC의 판정이 그 액수를 경감시킬 이유를 제공하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ISD에서 핵심 쟁점은 ICC에서 다뤄지지 않았고, 따라서 영향을 바로 예측하기 어렵다는 해석도 있다. 론스타는 인수·합병 승인 문제로 매각이 지연되던 6년여간 홍콩상하이은행(HSBC) 등 더욱 큰 규모의 제안을 한 외국계 은행에 팔 수 없었다는 주장을 편다. 그런데 ICC는 외환은행 가격 인하에 따른 손해 여부만 판정했다. 더 큰 쟁점에 대해서는 힌트를 주지 못하는 셈이다.

소송 결과와 별개로 한국이 많은 수업료를 지불했다는 반성도 있다. ‘국민정서법’으로만 보면 론스타는 ‘먹튀’ 투기자본이지만, 국제시장에서 통용되는 가치관·법리에 대한 이해가 낮았다는 논문도 발표됐다.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금융위 국세청 등 정부 관계부처 태스크포스가 예비비를 신청해 가며 그동안 사용한 ISD 대응 예산은 2017년까지만 400억원을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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