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윤중식] 단편영화 ‘모스트’와 대속



운전대를 잡지 않고 차 안에서 업무를 보거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시대가 도래했을 때 ‘트롤리 딜레마’는 단순한 철학적, 윤리적 사고 실험이 아닌 현실 문제가 된다. 트롤리 딜레마는 다수를 살리기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행위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를 묻는 실험이다. 열차가 선로를 따라 달리고 있고, 선로 중간에서는 인부 5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 손에는 열차의 선로를 바꿀 수 있는 전환기가 있다. 5명을 구하기 위해서 선로를 바꾸는 전환기를 당기면 된다. 하지만 다른 선로에는 1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5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선로 전환기를 당기면 되지만, 전환기를 당기면 다른 선로에 있는 인부 1명은 죽게 된다.

지난해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 미디어랩과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등으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은 230여 국가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결과는 지역에 따라 우선 보호의 가치가 다르게 나타났다. 서구에서는 사람이 많은 쪽이나 노약자 등을 우선 보호해야 한다고 답했다. 동양에서는 보행자나 교통규칙을 지키는 쪽의 안전이 우선돼야 한다는 답변이 많았다. 남미에서는 여성과 어린아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더 보호할 수 있도록 설계되는 것을 원했다.

문제는 인공지능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한 입력된 프로그램으로 움직이는 자율주행차가 갑자기 뛰어든 자전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급하게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다가오는 트럭에 치여 운전자가 죽는다. 왼쪽으로 돌리면 무리 지어 가는 여러 명의 보행자를 치는 상황이 온다고 했을 때다. ‘과연 어느 쪽으로 핸들을 꺾도록 프로그래밍할 거냐’는 질문을 던지자 질문을 받은 사람 모두는 당연히 차주인 한 사람이 죽는 거로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질문자가 ‘그럼 주인이 죽도록 프로그래밍된 차를 돈 주고 살 거냐’라는 질문을 던지자 응답자 모두 ‘싫다’거나 ‘모르겠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모스트(MOST·다리)라는 단편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다리는 배와 기차가 함께 지나다니기 위한 개폐식 다리로 부산 영도다리와 비슷한 구조이다. 영화는 다리를 관리하며 기차의 운행을 돕는 한 아버지와 어린 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들은 아버지 일터에 같이 가는 게 소원이었다. 다음 날 언덕 위 기계 관리실로 들어간 아버지는 멀리 강 아래에서 낚싯대를 던지며 노는 아들을 내려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행복한 순간은 잠시, 기계실 전화가 울린다. 다리 밑으로 배가 지나가게 해 달라는 사인이 들어오자 아버지는 레버를 조작해 다리를 들어 올린다.

그런데 다리가 올려진 상태인데 멀리서 빠른 속도로 기차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들이 눈을 들어보니 저 멀리서 기차가 하얀 연기와 함께 기적을 울리며 다가오고 있고 아버지 쪽을 보니 의자에 앉은 채 서류 같은 것만 살피고 있다. 아들은 놀라 “아빠, 기차가 들어와요. 빨리 다리를 내려주세요” 외치지만 아버지는 듣지 못한다.

아들은 있는 힘껏 팔을 뻗어 또 다른 레버를 조작하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더군다나 몸이 꽉 끼어 움직일 수조차 없다. 다음 순간, 가까이서 울리는 기적 소리를 듣게 된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아들 있는 쪽을 바라본다. 하지만 아들이 보이지 않는다. 당황한 아버지의 눈에 달려오는 기차가 보이고 이어 다리 밑에 매달린 아들이 보인다. 아들을 살리려면 레버를 조작해 다리를 내리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면 기차는 탈선해 강으로 추락하게 되고 기차 안 손님은 죽고 말 것이다. 아들을 살리자니 기차가 추락하고 기차 안 손님을 구하자니 아들이 죽는다.

울부짖는 아버지, 레버를 잡은 손은 무섭게 떨리고 있다. 죽음과도 같은 그 짧은 시간에 아버지는 결국 다리의 레버를 내려 아들을 희생시킨다.

대부분(MOST) 관객들은 이 장면이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한(MOST) 사랑이라는 것을 모른다. 대속(代贖)은 십자가의 보혈(寶血)로 만민의 죄를 대신 씻어 구원한다는 의미다. 구속(救贖)이란 피로 값 주고 산다는 뜻이다.

사순절 고난주간이 끝나고 이제 부활주일을 맞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구속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영생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마음을 전하는 데 성령이 임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윤중식 종교기획부장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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