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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1년이 만든 백래시… ‘브러더 문화’ 더 심해졌다




제과업체에 다니는 A씨는 최근 새로 부임한 상사가 남자 동료들에게 ‘남자끼리 모임 하나 만들자’고 하는 걸 들었다. A씨가 ‘왜 남자들만 모으냐’고 묻자 상사는 “내 ‘라인’ 좀 만들려고 한다. 남자끼리 해야 구설수도 안 나오고 취미가 맞다”고 답했다. A씨는 “미투 운동 이후 남성들끼리 모임을 갖고 어울리는 ‘브러더(brother) 문화’가 심해진 걸 느낀다”며 “이런 모임에서 승진에 중요한 연줄망이 만들어져 남성들끼리 서로 이끌어준다”라고 말했다.

교사 B씨도 얼마 전 학교 회의에서 미투 운동의 ‘백래시(반발심리)’를 실감했다. 회의 안건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때 ‘페미니즘’ 용어 대신 ‘성평등’이라고 하자’는 의견이 올라온 것이다. 그는 “성평등 수업 중 학생들이 ‘선생님 혹시 메갈, 워마드예요?’라고 물어 내가 공격의 대상이 된 듯한 느낌을 가질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미투 운동 이후 근로자 40% 이상이 직장에서 백래시를 경험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백래시 실태조사는 처음이다. ‘펜스 룰(Pence rule·여성 기피 현상)’ ‘브러더 문화’ ‘워마드(남성 혐오 커뮤니티) 낙인’ 등 반작용 유형은 다양했다.

민주노총은 1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관련 토론회를 열고 ‘미투 백래시’에 관해 조합원 40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 40.6%는 미투 운동 이후 ‘부작용이 있다’고 답했다. 부작용 사례로는 ‘회식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경우’(14.5%)가 가장 많았고 ‘업무에서 여성과 함께 일하지 않으려는 경우’(10.4%) ‘성폭력 사안에 남성들이 불편해하는 경우’(6.6%) 등 순이었다. 다만 응답자 52%는 1년간 여성비하적 언행이 감소했다고 답해 미투 운동의 긍정적 효과도 확인됐다.

여성 응답자들은 심층 면접에서 “성폭력 가해자 징계 등 외형적인 절차는 엄격해진 반면 여성 혐오적 의식은 더욱 심해졌다”고 털어놨다.

공기업에 다니는 C씨는 “직장에서 성희롱, 성추행이 발생하면 예전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징계하는데 그에 대한 반작용이 수면 아래서 나타난다”며 “사내 게시판에 ‘꿀빠니즘(페미니즘을 비하하는 용어)’ 등 노골적인 여성 혐오 단어가 올라온다”고 말했다. 건설업체에 다니는 D씨는 “원래부터 여성 채용을 꺼려했는데 미투 이후부턴 대놓고 여성 직원을 거부하는 분위기”라며 “‘우리가 조금만 잘못하면 미투할 거 아니냐’는 생각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일부 직장은 여성 기피 현상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미투 운동을 악용하는 모습”이라며 “백래시도 명백한 성차별이므로 정부와 기업, 노조가 인식 개선 사업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진숙 공공운수노조 여성위원장은 “건설, 금속, 식품업체 등 남성 직원이 많은 사업장에서 백래시가 강하다. 남녀 공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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