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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화장품·자동차… 이젠 ‘소유’ 대신 ‘구독’하며 산다








직장인 이모(26)씨는 친구와 같이 넷플릭스를 구독 중이다. 미국 시트콤 ‘정주행’(시리즈 1편부터 마지막 편까지 전부 시청하는 것)이 처음 목적이었는데, 요즘은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푹 빠졌다. 좋아하는 드라마와 비슷한 장르를 추천까지 해주는 게 마음에 쏙 들었다. 매월 구독비는 1만원이 넘지만 친구와 절반씩 낸다. 이씨는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재미있는 콘텐츠가 많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구독경제’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일정 기간마다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구독경제는 전 세계적으로 활발해지고 있다. 물건을 소유하거나 공유하는 걸 넘어 구독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구독경제라는 용어를 만든 기업 ‘주오라’에 따르면 구독기반 산업의 매출은 스탠다드앤드푸어스500(S&P500) 기업 매출보다 약 8배, 미국 소매업계 매출보다 약 5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구독경제 시장 규모가 2020년 약 600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사실 구독이라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는 새롭지 않다. 30대 이상 세대에게 구독이라는 용어는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 우유, 요구르트를 떠올리게 한다. 현재도 스타트업들이 정기배송 형태의 구독경제 모델을 선보이며 꽃, 면도기, 화장품 등을 주기적으로 소비자 집까지 배달한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구독의 물결이 산업 경계를 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소규모 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고가의 자동차 같은 내구재나 각종 동영상 콘텐츠, 음악까지 일정 금액만 내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변화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주오라의 창립자인 티엔 추오는 저서 ‘구독과 좋아요의 경제학’에서 디지털이라는 전달 방식, 디지털 구독에서 생성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방아쇠’로 지목했다. 온라인과 모바일 발달로 소비자들이 휴대전화에서 간편하게 구독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다양한 영상과 음악을 ‘버벅거림’ 없이 즐길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졌다. 티엔 추오는 “제품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조직 사고방식이 바뀌는 변화가 ‘구독경제’의 결정적 특징”이라며 “휴대전화를 통한 경험이 대폭 개선된 덕분에 디지털 소비자 구독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 성공 모델이 넷플릭스다. 월정액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넷플릭스는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영화와 드라마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다. 이전까지 통용되던 모델이 영상 콘텐츠를 다운로드받아 소유하는 구조였다면 적은 돈을 내고 더 많은 콘텐츠를 볼 수 있지만 소유하지 않는 개념으로 달라졌다. 넷플릭스는 1억4000만명에 이르는 가입자를 기반으로 꾸준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달라진 환경은 애플도 구독경제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애플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3종의 구독 서비스를 공개했다. 매월 일정 금액을 내고 영화와 드라마 등을 볼 수 있는 ‘애플 TV+’,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신문과 300개 이상의 잡지가 제공되는 ‘애플 뉴스+’, 다양한 게임을 자유롭게 구독할 수 있는 ‘애플 아케이드’가 그것이다. 아이폰의 매출 부진을 구독경제 기반 서비스로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에는 자동차 같은 고가 물건도 구독경제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초 자동차 구독 서비스인 ‘현대 셀렉션’을 선보였다. 월 72만원을 내면 주행거리 제한 없이 3개 차종을 원하는 대로 바꿔가며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해외에서는 포르쉐가 6가지 자동차 모델을 이용할 수 있는 ‘패스포트 구독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캐딜락도 1년에 최대 18번 차를 바꿀 수 있는 구독 서비스를 내놓았다.

구독경제의 성공은 밀레니얼 세대(1981∼96년 출생한 세대) 등장과도 맞물린다. 밀레니얼 세대는 당장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욜로(YOLO)’에 열광하고, 물건의 소유보다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즉 대출과 가격 협상, 주기적인 관리 등 여러 번거로움을 겪으며 자동차를 소유하는 대신 일정 금액으로 다양한 차를 편하게 이용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뜻이다. 경제적 요인을 감안하면 과거 세대보다 소득이 부족해지면서 소유하지 않고도 물건을 이용할 수 있는 구독 모델을 선호하게 됐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구독경제의 확장성에 주목한다. 업종을 막론하고 구독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된다고 내다본다. 티엔 추오는 “소유권 개념은 이제 종말을 맞았으며, 접속이 새로운 필수조건이 됐다. 구독 모델은 업종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업계를 관통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독 서비스가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극장의 넷플릭스’라고 불렸던 미국의 ‘무비패스’는 실패 사례다. 무비패스는 한 달에 9.95달러를 내면 미국의 91%의 영화관에서 매일 영화 1편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2017년에 수백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문제는 수익 모델에 비해 가입자가 지나치게 몰리면서 손실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데서 불거졌다. 업계에서는 복잡한 수익 계산이 필요한 구독 모델의 특징을 간과했다는 경고가 쏟아졌다. 무비패스는 한 달에 관람할 수 있는 영화 수를 3편으로 제한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생사의 기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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