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 인터뷰] “배우로서의 로망은, 끝까지 연기를 잘해내는 것”

치매를 소재로 한 영화 ‘로망’의 주연배우 이순재. 그는 “공교롭게도 최근 출연한 연극 세 편 ‘그대를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당신’ ‘장수상회’가 모두 치매 설정을 다뤘다. 연극에 비해 영화는 표정 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해야 해서 좀더 까다롭더라”고 설명했다. 메리크리스마스 제공
 
이순재 정영숙 주연의 영화 ‘로망’ 한 장면. 메리크리스마스 제공





“우리 영화가 원래 그런 영화예요(웃음).”

영화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는 기자의 말에 배우 이순재(84)는 인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3일 개봉한 신작 ‘로망’(감독 이창근)은 동반 치매에 걸린 노부부(이순재 정영숙)의 애틋한 로맨스와 가족애를 다룬 영화. 자신을 잃어가면서도 자식 생각부터 하는 부모의 마음이 절절하게 녹아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순재는 “극 중 내가 연기한 조남봉은 가부장적이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분명한 인물”이라며 “이 작품은 결정적 위기상황에서 함께할 사람은 결국 부부라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그것이 모든 남편과 아내들의 진정한 로망이 아닐까 싶다”고 소개했다.

여든 중반에 접어든 그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치매 걱정을 하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늘 위기의식을 느끼죠. 배우들은 치매 걸리면 큰일나거든. 밥벌이가 안되잖아. 우리는 절대적으로 암기력이 필요해요. 기억력이 쇠퇴하면 물러나야 할 때가 된 거죠.”

서울대 철학과 재학 시절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의 영화 ‘햄릿’(1954)을 보고 매료된 이후 그는 평생 연기 외길을 걸어 왔다. 돈 벌기 어렵고 ‘딴따라’라는 괄시를 받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예술적 창조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요즘 후배들을 바라보면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이순재는 “배우는 역할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이와, 작품보다 자신을 내세우는 이로 구분된다. 이를테면 김명민 최민식 송강호 이병헌 같은 친구들은 전자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연기를 참 제대로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칭찬했다.

반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연예인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연예인이 공인은 아니지만 전파성과 영향력을 지니므로 늘 행동을 조심하고 절제해야 한다. 승리 같은 경우도 그렇다. 주변의 유혹을 극복하고 본업에 정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끝도 없이 파고들 수 있는 게 우리 직종이거든. 갈수록 새로운 희열이 나온다고. 끊임없이 배워야 해요. 그러다 보면 시각이 달라지고 자신의 틀을 뛰어넘을 수 있지. 연기에는 완성이라는 게 없어요. 나이에 상관없이 계속 도전하고 새로운 걸 만들어나가야 하죠.”

배우로서 이루고픈 ‘로망’이 있느냐 묻자 이순재는 “끝날 때까지 건강하게 잘하고 싶다”고 답했다. 다시 택한다 해도 배우가 되겠냐는 물음엔 역시 지체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좋지. 얼마나 좋아. 예술가는 자유분방하거든. 생각의 자유로움, 생활의 자유로움이 있으니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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