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건반 직접 운반 거장의 예술愛… 이유있는 무대 위 큰 울림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2003년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서 단독 리사이틀을 가진 그는 공연기획사 마스트미디어 사무실에 자신의 공구통을 남기고 가 재회의 여운을 남겼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예술을 의미하는 ‘art’라는 단어는 라틴어 ‘ars’와 고대 그리스어 ‘techne’에서 유래했다. 모두 ‘기술’ ‘기교’를 뜻하는 단어다. 예술가(artist) 또한 이전에는 장인(artisan)이라 불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정신적인 영역과 물질적인 영역을 이어주는 매개자라 할 수 있다.

일주일(3월 20~26일)간 한국에 머무르며 총 4회의 리사이틀을 소화한 폴란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행보는 이런 ‘예술’과 ‘예술가’의 어원을 되새기게 했다. 2003년 첫 내한공연 이후 오랜만에 성사된 거장의 연주는 거의 흠잡을 데 없었다.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공연 1부에서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치던 도중 비염 때문에 코피가 흐르는 바람에 호흡이 살짝 흐트러진 것을 제외하면, 모든 공연에서 그는 자연스러운 음색과 풍성한 울림으로 청중을 만족시켰다.

그러나 이 소리는 무대 위에서 단편적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거장은 무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는 매 공연마다 자신의 건반과 액션(해머를 비롯한 피아노에서 소리를 내는 부분)을 직접 들고 다니는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다. 이번 내한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공항에서 숙소 그리고 공연장으로 건반을 운반할 때마다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심지어 대구오페라하우스 공연이 끝난 뒤에는 비 내리는 경부고속도로를 몸소 운전하며 새벽 2시쯤 서울에 도착했다. 운반인과 전속 조율사를 대동했음에도 거장은 공연 전후 직접 건반을 조립하고 해체했다(때로는 조율도 직접 했다). 이는 그가 악기를 기계적으로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피아노 조립이 끝나면 지메르만은 공연 전까지 피아노 앞에서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했다. 기획사에서 제공하는 더 편한 숙소를 거절하고 공연장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에 머무르며 쇼핑이나 관광도 마다한 채 한국에 체류하는 일주일 내내 그는 오로지 공연장과 연습실만을 오갔다. 공연 당일에는 객석을 오픈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 리허설을 멈추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는 페이지 터너 없이 직접 악보를 넘기며 연주했다. 이미 오랜 세월 수백 번은 넘게 연주하며 암보한 곡이 분명한데도 그는 마치 처음 연주하는 듯한 자세로 임했다.

음악이 연주되는 그 순간을 위해 모든 노력을 오롯이 쏟아붓는 지메르만의 모습은 일종의 제의를 거행하는 제사장의 모습과도 같았다. 이렇게 보면 사진이나 녹음에 극도로 거부반응을 보인 것 또한 이해가 갔다. 시간예술인 음악 행위를 기록으로 남겨두려는 것 자체가 그로서는 불경스럽게 느껴질 법도 했다. 이렇듯 장인과 같은 진지한 접근 덕분에 한국 청중은 ‘오래된 신곡’에 감동할 수 있었다.

예민한 연주자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 혹은 그의 명연에 몰입한 덕분인지 4차례 공연 모두 객석 분위기는 훌륭했다. 지메르만은 “근래 보기 드문 훌륭한 청중들”이라며 행복해 했다고 한다. 마치 다음 방문을 기약이라도 하듯 그는 서울에 자신의 악기 공구통을 남겨두고 출국했다. 거장의 16년 만의 내한은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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