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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리스크’끌어내린 스튜어드십 코드... 조양호 회장 퇴진 견인

주주들이 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해 의사진행 절차를 두고 항의하고 있다. 이날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은 부결됐다. 조 회장은 1999년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대한항공 경영권을 잃었다. 김지훈 기자





자본시장의 ‘집사’(스튜어드)가 잘못된 경영을 한 기업 총수를 끌어내렸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경영권을 잃게 되자 금융투자업계는 ‘종이호랑이’ 국민연금의 변신이 결정타라고 분석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조 회장의 퇴진을 계기로 ‘집사’의 힘은 더 세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선 고질병인 지배구조 문제, 반(反)주주친화 경영에 칼을 대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장기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자본시장 저평가) 해소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스튜어드십 코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지나친 경영 간섭, 배당 확대에 따른 기업 성장잠재력 훼손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27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포함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내 기관투자가는 92곳(자산운용사 32곳, 사모펀드운용사 30곳, 보험사 3곳, 증권사 3곳, 은행 2곳 등)에 이른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들이 고객의 자산을 맡아 관리하는 집사처럼 연금 가입자의 재산이 투자된 기업 가치를 충실히 관리하도록 하는 지침이다.

전문가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이 긍정적이라고 본다. 조 회장의 퇴진으로 ‘철옹성’ 같았던 국내 기업의 폐쇄적이고 왜곡된 지배구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진단이다.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자본시장에 32년째 종사하면서 외부의 의결권 행사를 통해 지배주주가 사내이사 재선임에 실패한 건 처음 봤다”며 “초유의 사건”이라고 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 회장 일가가 기업 가치를 훼손했다는 점에 대해 시장에서나 사회적으로나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졌던 게 아닌가 싶다. 재벌 오너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열풍이 불면서 한국형 주주행동주의도 싹을 틔우고 있다. 주주행동주의는 주주가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활동이다. 국내에서는 한국형 행동주의펀드 KCGI가 관심을 받고 있다. 조 회장 연임을 반대하는 대한항공 직원들과 시민단체들이 대한항공 소액주주 140여명에게서 지분 0.54%를 위임받으며 ‘개미’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사건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와 낮은 배당 성향은 한국 자본시장 저평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하나금융투자는 최근 보고서를 내고 “배당과 자사주를 합산한 총 주주환원율 관점에서 코스피는 글로벌 최저 수준”이라며 주주환원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었다.

반면 주주권 강화의 그늘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국민연금이 독립성과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주주권을 광범위하게 행사한다면 기업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건 의미가 있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보이는 건 아쉬운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박창균 선임연구위원은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에 과한 배당을 요구했을 때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던졌다”며 “스튜어드십 코드가 만능으로 모든 기업 오너를 쫓아내거나 무차별적으로 배당을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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