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건국설화 새로 쓸 유물, ‘거북아 거북아…’ 토제방울 나왔다

고령 대가야 고분군서 출토된 토제방울의 6개 선각그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구지봉(남성 성기모양), 구지가에 등장하는 거북, 관을 쓴 남자, 춤을 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하늘에서 줄에 매달려 내려오는 금합을 담은 자루.
 
20일 경북 고령군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 발굴 현장에서 대동문화재연구원 홍대우 연구원이 토제 방울이 출토된 무덤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토제 방울에는 대가야 건국 설화가 새겨져 기존의 금관가야 중심의 설화를 뒤엎는다. 문화재청 제공


1500년 전 고령 대가야의 타임캡슐이 열렸다. 5세기 후반에 조성된 어린이 무덤에서 6개 가야연맹체의 건국 설화를 새로 쓰게 하는 토제 방울이 나왔다. 흙으로 빚은 지름 5㎝의 이 방울에는 이름 모를 대가야의 장인이 그가 살던 대가야국의 건국 설화를 형상화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아주 가늘고 얕은 선이어서 희미하긴 했지만, 형체는 분명했다. 구지봉(가야산 상아점 바위), 거북(구지가), 관을 쓴 남자(구간), 춤을 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하늘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금합을 담은 자루….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

구지봉에 모인 사람들이 자신들을 다스릴 임금이 온다는 말을 듣고 기뻐 춤추며 구지가를 불렀다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건국 설화와 완전히 같은 버전이다.

20일 토제 방울이 출토된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 발굴조사 공개 현장을 다녀왔다. 토제 방울은 석재를 이용해 널을 안치하는 횡혈식의 길이 165m 작은 무덤에서 나왔다.

대동문화재연구원 홍대우 연구원은 무덤을 가리키며 “이곳에서 키 1m 남짓의 4~5세 여아의 두개골 조각과 화살촉 3점, 소형 토기 6점, 쇠 낫 1점이 나왔다. 목에 걸었을 법한 위치에선 곡옥도 출토됐다”고 했다. 이어 “토제 방울은 아이 발치에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된 석곽묘 10기와 석실묘 1기도 함께 발굴됐다.

배성혁 조사연구실장은 “우리나라에서 건국 신화가 새겨진 유물이 나온 건 이번이 최초다. 앞으로도 힘들 국보급”이라면서 “토제 방울은 무덤 주인인 아이가 갖고 놀았거나 부장용 의례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토제 방울의 출토로 가야 건국 설화를 새롭게 써야 할 상황이 됐다. 가락국기에 나오는 건국 설화가 금관가야의 전유물이 아님이 밝혀진 것이다. 가락국기의 ‘둥근 황금알 여섯 개’에서 보듯 시조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卵生)설화는 가야지역 국가들의 공통적인 건국 신화인데 그동안 금관가야의 신화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배 실장은 설명했다.

대가야 건국 설화는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인용된 최치원의 석이정전(釋利貞傳)이 바탕이 된 ‘정견모주설(正見母主說)’이다. “가야산의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에게 감응되어 대가야왕 뇌질주일과 금관국왕 뇌질청예 두 사람을 낳았다”며 대가야왕인 뇌질주일을 형으로, 김해 금관가야의 수로왕인 뇌질청예를 동생으로 표현했다. 가야사 연구자인 김수환씨는 “금관가야는 4세기 전성기를 누리다 고구려의 침입으로 급격히 쇠퇴하고 대신 대가야가 성장했다”며 “지역 맹주가 된 대가야는 새로운 신화가 필요했고, 그래서 두 번째 정견모주설이 생겨났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고령=글·사진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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