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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항소심 재판장 이례적 입장표명 “예단은 법정 모독”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김경수 경남지사가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을 마친 뒤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김경수 경남지사의 19일 항소심 첫 공판에서 재판장인 차문호 부장판사가 “공정한 재판을 하겠다”고 밝히는 이례적 모습이 나타났다. 본인이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데다 더불어민주당이 1심 판결 이후 법원을 향한 공세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차 부장판사는 검찰과 변호인에게 “불공정 재판이 우려된다면 지금이라도 기피신청을 하라”고 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 심리로 열린 김 지사의 항소심 1회 공판기일에서 차 부장판사는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고 향후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부득이 이 사건에 임하는 입장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재판부 경력만으로 결과를 예단하는 일각의 태도는 경기를 보기도 전에 심판을 핑계 삼아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태도는 피고인을 위태롭게 만들고 우리 재판부 판사들을 모욕하는 것이며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했다.

차 부장판사는 또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는 법정 밖이 아니라 법정 안에서 치열한 논쟁과 증거조사를 통해 답을 찾아나가자”며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에 임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재판부가 선고 전 짧게 소회를 밝히는 경우는 있지만 이처럼 재판 진행을 앞두고 긴 시간을 할애해 입장을 밝히는 일은 보기 힘들다. 1심에서 징역 2년형과 법정 구속을 선고한 성창호 부장판사를 향해 여당이 집중 공세를 펼치는 등 정치쟁점화된 재판에서 공정성 시비를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여당은 지난 1월 30일 선고 이후 “양승태 적폐 세력의 보복 판결”이라며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김 지사도 1심 선고 직후 “재판장이 양승태 대법원장과 특수관계인 것이 이번 재판에 영향을 줄 거란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차 부장판사도 항소심 재판부 배당 당시 이력을 두고 논란을 겪었다. 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지내던 당시 전속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다. 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요청을 받고 상고법원에 부정적인 사촌동생 차성안 판사를 설득하는 데 동원되는 등 사법농단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차 부장판사는 “이 재판에서의 논란은 저의 경력이 하나의 요인이 됐다”며 “피고인이 재판을 편안하게 받게 하기 위해 재판을 맡고 싶지 않았다”고 솔직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는 “특히 피고인과는 옷깃도 스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차 부장판사는 김 지사의 보석 신청에 대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무죄추정과 불구속 재판의 원칙 하에 보석 필요성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발언 기회를 얻은 김 지사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법적 절차에 따라 충실히 임했다”며 “도정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2회 공판기일인 다음달 11일까지 보석 필요성을 검토한 뒤 인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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