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LA 필’ 탄탄한 재정의 비밀, 시민과의 계속된 소통이었다


 
미국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모습. LA필은 소외계층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의 미국 버전 ‘YOLA’를 운영하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창단 100주년을 기념해 내한 공연 중인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0명의 LA필 유스 오케스트라(YOLA) 단원 및 교육 강사들을 대동해 한국의 꿈의 오케스트라와 연합 음악캠프를 개최했다.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80명으로 구성된 LA-한국 연합 유스 오케스트라의 공개 리허설이 진행됐다. 지휘봉을 잡은 LA필 음악감독 구스타보 두다멜은 다소 얼어있는 어린 단원들에게 “마음 놓으세요, 저는 여러분을 해치지 않아요”라고 농담을 건네며 특유의 친화력으로 이들을 사로잡았다.

LA필은 2007년 소외계층 아동을 대상으로 악기를 대여하고 음악을 가르치는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의 미국 버전인 YOLA를 창단했다. 2009년부터 LA필 음악 감독으로 있는 엘 시스테마의 히어로 두다멜의 지대한 영향이 엿보이는 이 프로그램은 전용 콘서트홀을 건립할 정도로 궤도에 오른 상태다.

이들의 적극적인 공익사업 뒤에는 탄탄한 재정이 뒷받침되고 있다. LA필은 세계 최고의 연봉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로 명성이 높다. 그들의 상주공연장인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약 3000억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지어졌는데 2003년 개관 당시 전 세계 공연장 건립비 중 최고점을 찍었다. 그럼에도 LA필 시즌 콘서트는 무료 공연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프로그램도 진지한 고전음악부터 팝 음악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다. 1992년 폭동이 일어날 만큼 갈등의 여지가 있는 ‘인종의 도가니’ 속에서 LA필은 사회의 문화적 통합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천문학적 예산이 상당 부분 기부금으로 채워진다는 점이다. 국가가 예술계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미국 문화정책의 원칙상 LA필은 정부 지원을 거의 기대할 수 없고, 그만큼 민간 후원자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충성스럽기로 소문난 LA필 후원자들은 이번 투어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YOLA 단원과 교육 강사들의 한국 체류비와 항공비용이 후원금으로 충당됐다. 이 중 14명의 후원자들은 자비로 이번 투어에 동행하며 악단의 활약을 직접 확인하고 있었다.

LA필의 ‘부(富)’가 처음부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1930년에는 심각한 재정난으로 해체 위기까지 갔었다. 월트 디즈니 아내의 기부로 건립된 상주공연장 또한 갈수록 늘어나는 예산과 관련 기관들의 불화, 반대 여론, 그리고 불황을 10년 넘게 견뎌야 했다.

오늘의 안정된 재정을 확보하는 데에는 악단과 시민, 사회와의 끊임없는 소통이 있었다. 난해한 고전음악이나 현대음악뿐 아니라 존 윌리엄스의 영화음악에도 공을 들이고, 소외 계층 프로젝트에 거금을 들이는 이유는 그들의 음악이 특정 기득권의 소유물이 아닌 시민 전체의 자산이라는 것을 설득하기 위함이다. 시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절묘하게 유지되는 대중성과 예술성의 균형, 그리고 미래 청중 확보를 위한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 50여개의 한국 지역 오케스트라들 앞에 놓여있는 난해한 숙제가 바로 이것이다.

<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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